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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이 어제 밝힌 검찰 수사에 임하는 입장은 귀를 의심할 만큼 믿기지 않을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조사 시기는 ‘대통령 관련 의혹 사안이 모두 정리된 뒤에’, 조사 방법은 ‘서면조사’를 제시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구속된 최순실·안종범·정호성·차은택씨는 물론 이제 막 시작된 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들에 대한 수사까지 모두 완료된 시점에야 조사를 받겠다는 것이다. 변호인으로서 사건을 검토하고 변론 준비를 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누가 봐도 시간 끌기요, 검찰 수사를 가로막겠다는 술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수사 시기와 방법을 입맛대로 고르겠다는 것은 박 대통령이 저지른 범죄혐의의 중대성을 고려해도, 여전히 법 위에 군림하겠다는 오만방자한 태도로 비춰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대국민담화에서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눈물을 비치며 한 말도 새빨간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분노한 민심에 고개를 수그리기는커녕 뒤통수를 치고 농락한 꼴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오른쪽)가 18대 대선을 이틀 앞둔 2012년 12월17일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의 경기 군포시 거리 유세에 동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호인의 입장은 박 대통령의 생각과 똑같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현재 대통령 심정이라며 “선의로 추진했던 일이었고 긍정적인 효과도 적지 않았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 매우 가슴 아파하고 계시다”고 전했다.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달라”고도 했다. 변호인의 입을 빌려 3차 대국민담화를 내놓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입으로는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면서 정작 자신에게 요구되는 책임은 외면하고, 한술 더 떠 이젠 ‘여성’을 내세워 뒤로 숨으려 드는 그 뻔뻔함에 더 할 말이 없다.

구속된 측근들을 통해 드러나고 확인된 의혹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국정농단의 몸통이자 주범이다. 이들이 온갖 분야의 국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사람이 박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이라면 스스로 성역 없는 수사를 받겠다고 하고, 진솔한 사과와 함께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하는 게 국가 지도자로서의 올바른 자세다. 그런데도 자기 한 몸 지키겠다고 현직 대통령이란 지위를 울타리 삼아 버티고 있다. 비선 실세에게 정부를 헌납한 대통령이 수사를 자청하기는커녕 요리조리 피해 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

민심이 무엇을 원하는지, 국정혼란을 막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더 기대할 것이 없다. 지금 대통령 퇴진 요구는 세대와 지역, 이념을 초월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버티다가는 불행한 말로를 자초하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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