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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이 규정한 인권을 보호하는 본연의 책무를 소홀히 한 채 ‘식물기관’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공권력의 인권침해에 대한 시민의 고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장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의 인권 보호보다 권력기관 보호에 더 힘을 쏟고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인권위가 인권침해에 눈을 감거나 인권 문제를 덮어버리는 역할을 계속한다면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없다.

인권위는 특히 현병철 위원장의 등장 이후 존재감을 잃기 시작했다. 이는 통계수치로도 입증된다. 경향신문이 인권위가 공개한 결정례를 전수조사한 결과 현 위원장 체제에서 검찰·경찰의 인권침해에 대한 시민의 진정을 인정하는 빈도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2007년 51건이던 검경의 인권침해 인정 건수는 ‘현병철 인권위’ 출범 후인 2011년 21건으로 줄었다. 이후에도 인권위 인정 건수는 갈수록 줄어 2012년 15건, 2013년 22건, 지난해 8건을 기록했다. 공권력 인권침해 진정이 2007년 1287건에서 지난해 1538건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인 점을 감안하면 인권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좀 더 분명해진다.

이뿐 아니다. 인권위는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에 대한 경찰의 인권침해 등 상식적으로 인권침해가 명백한 10건의 긴급구제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경찰과 정부 부처 등 권력기관에 대한 견제는 갈수록 미약해졌다. 특히 국가정보원의 경우 불법감시, 고문, 도·감청 및 해킹 등의 중대 인권침해 진정 147건 가운데 단 한 건만 인정했다. 인권위가 세계 인권기구 연합체인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로부터 지난해 ‘등급보류’ 판정을 받은 것은 온당한 평가로 보인다.

23일 서울 무교동 국가인권위원회 사옥 앞 신호등에 적색등이 켜져 있다. 현병철 위원장 취임 후 지난 6년간 인권위는 기능과 역할이 크게 후퇴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인권위의 위상 추락은 기본권보다 국가기관의 권위를 우선시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낮은 인권의식과 무관치 않다. 특히 인권위원들의 다양성과 독립성 문제가 중요하다. 대통령과 국회가 인권위원을 선출하는 제도가 온존하는 한 인권위가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인권위원 상당수가 법조 출신이어서 공권력의 인권침해를 실정법 잣대를 들이대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현실도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현 위원장이 자리를 지키는 한 인권위의 위상 제고는 무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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