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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검은 3일 “이 사건(사법농단)은 특정인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업무상 상하관계에 의한 지시·감독으로 이뤄진 범죄행위”라며 “두 전직 대법관은 이미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속 상급자로서 더 큰 결정권한을 행사한 만큼 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전직 대법관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2월 4일 (출처:경향신문DB)

두 전직 대법관은 임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 기조실장과 차장으로 근무할 당시 상관인 법원행정처장을 역임했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2월부터 2년간 행정처장으로 재직하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대선개입 사건,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지방의원 소송 등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전 대법관 후임으로 행정처장을 지낸 고 전 대법관은 ‘최유정 전관로비 사건’ 당시 법관들에 대한 수사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 일선 법원으로부터 검찰 수사기록을 빼낸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은 장기간 조직적으로 자행된 법관사찰 등에는 박·고 전 대법관 모두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두 전직 대법관 수사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사건 가해자 측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만난 정황도 포착했다고 한다.

대법관은 사법 정의의 상징이며 인권 수호의 최후 보루다. 개별 법관들로서는 일생을 걸고 도달하고픈 목표이기도 하다. 지금 구속의 기로에 놓인 전직 대법관 2인을 보며, 법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통렬히 자성해야 마땅하나, 혹여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여전히 검찰이 과잉수사를 한다고 생각하거나 ‘징계사유에 해당할지는 몰라도 형사적 범죄는 안된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가. 혹여 그런 법관들이 다수라면, 법원에 더 이상의 희망을 걸기는 어렵다.

박·고 전 대법관의 구속 여부는 이번주 중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결정된다. 영장심사를 맡을 법관은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다. 법과 원칙, 사실과 증거에 따라 판단하면 그뿐이다. 법원이 이번 기회마저 놓친다면 사법 신뢰를 회복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사법권은 법관의 것이 아닌, 주권자의 것임을 새겨야 한다. 검찰도 수사의 고삐를 죄어 사법농단의 정점인 양 전 대법원장을 조속히 소환조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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