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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인공 임신중절(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포함시키고 자격정지 처분키로 하자 산부인과 의사들이 ‘수술 파업’을 선언하고 나섰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이하 직선제 산의회)는 28일 “모자보건법에 따라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인공 임신중절 외의 수술을 전면 거부한다”고 밝혔다. 직선제 산의회는 “불법 낙태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여성과 의사에 대한 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행정처분을 유예하라”고 촉구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속에 여성의 생명·건강권만 볼모가 될 처지다.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인공임신중절 수술 전면 거부 선언 기자회견'에서 김동석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복지부는 지난 17일 ‘형법 제270조를 위반해 낙태하게 한 경우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한다’는 내용의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공포·시행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복지부는 유사한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가 반발에 부딪혀 물러섰다. 그런데 2년이 지나 문재인 정부의 복지부에서 불법 낙태를 ‘진료 중 성범죄’와 같은 층위의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지금 왜 이런 조치가 필요한지 납득하기 어렵다. 최근 임신중단 합법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청원이 23만명을 넘겨 청와대 답변까지 나온 터다. 조국 민정수석은 “현행 법제는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빠져 있다”며 “처벌 강화 위주 정책으로 임신중절 음성화 야기, 해외 원정 시술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도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수술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피해는 오롯이 여성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수술하는 병원은 줄어들고, 비용은 급등하고, 여성들은 해외로 나가거나 인터넷에서 불법 낙태약을 사먹게 될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공 임신중절과 관련된 법과 정책은 여성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 안전한 임신중절을 시기적절하게 받는 것을 방해하는 장벽을 철폐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성 인권을 도외시한 채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복지부의 행태야말로 비도덕적이다. 그렇다고 수술 거부로 맞서는 일도 의료인다운 모습이라 할 수 없다. 복지부는 개정 규칙을 폐지하고, 의사들은 수술 거부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 헌재도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을 서두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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