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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서 발표하는 가계동향조사자료 때문에 정부의 고위직 인사 두 명이 석 달 간격으로 교체되었다. 지난 5월 교체된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며칠 전 교체된 황수경 전 통계청장이 그 당사자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30년간 이만큼 정치적 파장이 큰 통계자료가 있었을까? 가계동향조사는 우리나라의 소득분배 추이나 가계의 경제활동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가계동향조사를 둘러싸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지난 5월 발표된 2018년 1분기 자료와 며칠 전 발표된 2분기 자료에 의하면, 소득 하위 20% 계층(소득 1분위)의 가계소득은 전년 동분기보다 크게 감소했고 소득 상위 20% 계층(소득 5분위)의 가계소득은 전년 동분기보다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이러한 발표가 나오자 야당과 일부 언론은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때문에 빈익빈 부익부가 더 심화되었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최근 발표된 가계동향조사자료를 가지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성공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무리스럽다. 우선 최근 3년간 가계동향조사의 표본수와 표본구성에 큰 변화가 있었다. 몇 년 전 통계청에서는 가계동향조사를 2017년에 중단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 때문에 시간의 경과에 따라 탈락되는 표본을 대체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하던 신규표본표집을 2017년에는 전혀 하지 않았고 결국 2017년 조사는 매우 작은 수의 표본을 가진 간이조사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가계동향조사를 중단하지 말라는 각계각층의 여론이 있어 다시 계속하기로 결정을 번복하면서 2018년에는 전체표본의 60% 정도를 신규표본으로 구성하여 조사를 진행하였다.

결과적으로 2016~2018년 사이에 표본수와 표본구성에서 큰 변동이 생긴 것이다. 2016년 1분기에 7000여개이던 표본이 2017년 1분기에는 4000여개로 크게 줄었고, 2018년 1분기에는 6600여개로 다시 증가하였다. 3개년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표본은 1600여개밖에 되지 않는 기형적인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표본수와 표본구성에 큰 차이가 나면 당연히 연도 간 비교라는 게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인데 통계청에서 단순비교를 공표하면서, 그리고 그 비교를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 아전인수격으로 확대 해석하면서 사달이 난 것이다. 비유를 들자면 작년에는 딸기 30개와 사과 20개를 수확하였고, 올해는 사과 25개와 배 15개를 수확하였는데 이를 두고 올해 과일 수확량이 작년 과일 수확량보다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에 대해 왈가왈부했던 셈이다. 정부 비판자들은 합계라는 면에서 보아 40개가 50개보다 작으니 농사가 실패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인데, 달리 보면 두 해에 공통으로 생산된 사과만 놓고 보면 20개에서 25개로 수확량이 늘었으니 올해 과일농사가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필자가 3개년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표본에 대해 계산한 바에 의하면, 1분위 소득은 2016년 1분기와 2017년 1분기 사이에 크게 감소했다가 2017년 1분기와 2018년 1분기 사이에는 크게 증가하였다. 5분위 소득은 2016년 1분기와 2017년 1분기 사이에 증가했다가 2017년 1분기와 2018년 1분기 사이에는 약간 감소하였다. 즉 공통 표본만 보면 2016~2017년 사이에 악화된 불평등이 2017~2018년 사이에 개선된 것이다.

만일 표본수나 표본구성의 큰 변화가 없었는데 1분위 소득이 감소하고 5분위 소득이 증가했다고 하면 이것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를 의미하는가?

아니다. 하위소득은 정체되거나 감소하고 상위소득은 급성장하는 서민배제적 성장패턴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1990년대 중반부터 우리 사회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병리현상이다. 기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나 포용적성장 정책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된 정책들이다.

범죄율이 높아지니까 경찰관 수를 늘렸는데 어떤 통계학자가 경찰관이 많아져서 범죄가 더 늘었다고 주장한다면 얼마나 황당한가?

이 통계학자의 오류는 상관관계를 인과관계와 혼동한 데에 있다. 만일 경찰관이 많아져서 범죄가 늘었다고 주장하고 싶으면 더 엄밀하고 사려 깊은 분석을 진행하여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사려 깊은 분석은 사라지고 정파적 이익이나 신념에 의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것이 사회적 규범이 되어 안타깝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이 정책들 때문에 불평등이 심화되었다고 야단들인 것이다. 통계청장의 교체와 관련하여서는 정부가 통계조작을 시도하려 한다는 어설픈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우진 |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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