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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대학 입시의 공정성과 엄밀성은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다. 입시에서는 단 한 명이라도 불이익을 받거나, 특혜가 주어져서는 안된다. 수능 문제는 전 영역에서 한 점 흠결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올해 수험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혼란이 크고 입시 공정성이 훼손된 상황에서 시험을 치르게 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 딸의 이화여대 입시부정에 수험생들은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대학은 실세의 딸을 위해 입시요강을 바꾸고, 면접 점수를 조작했다. 특혜는 입학 이후에도 계속됐다. 교수들은 일개 학생에게 상상할 수 없는 편의를 제공했다. 중학생 수준도 안되는 비문 투성이 리포트에 높은 점수를 주고 수강신청을 대신 해줬다. 그런데도 당사자는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말로 또래를 멸시하고 세상을 조롱했다. 지난 주말 촛불집회에 중고생들의 참여가 많았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최순실 모녀의 농단이 없더라도 교육은 이미 불공정한 게임이 됐다.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공정한 입시니, 교육의 기회균등이니 하는 말은 허상이 된 지 오래다. 이제 균등이란 서울 강남에서 월 500만원 사교육을 받는 학생과 가난한 조부모 밑에서 주경야독하는 학생이 같은 시각 같은 문제를 푼다는 것 하나밖에 없다. 교육은 한때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 높고 견고한 벽이 됐다. 개천에서는 더 이상 용이 나지 않는다. 명문대 입학생의 부모는 대개 고위 공무원이거나 대기업 임원, 변호사·의사 같은 전문직이다. 이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자녀의 입시 실패가 곧장 계층 하락으로 이어지므로 허리띠를 졸라매 사교육에 투자하지만 대부분 본전도 못 건진다.

대학 진학은 중요하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쏟은 땀방울은 가치가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학생과 학부모의 손실이 너무 크다. 수능을 끝으로 수험생들이 그동안 펼쳐온 동료와의 선의의 경쟁도 막을 내린다. 이제는 협동과 연대를 할 차례다. 좁은 교실과 칸막이가 쳐진 독서실에서 나와 주변 사람들과 사회에 관심을 갖자. 전국의 60만여 수험생들이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너진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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