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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에서 성착취 영상을 유포한 ‘박사’ 조모씨가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미성년자 등의 성착취 촬영물을 불법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시민들이 공분하자 정치권이 앞다퉈 가해자 엄벌과 대책 마련을 약속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근본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운영자는 물론 회원 전원에 대한 조사, 신종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근절책 마련을 정부와 경찰에 지시했다. 더불어민주당도 20대 국회에서 불법촬영물 처벌 강화 내용 등을 담은 ‘n번방 사건 재발금지 3법’을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국민의당과 민생당 등은 국제 공조 수사, 온라인상 성착취물 수사 전담기구 설치 추진 등을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불관용원칙과 근절방안이 시급하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이런 움직임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시민들이 국회 국민동의청원 1호 법안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에 이 같은 내용을 담아 제출했지만 의원들은 이 법안을 무시했다. 당시 청원인들은 해외 서버에 대한 경찰의 국제 공조 수사와 디지털 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디지털 성범죄자 처벌 강화를 위한 양형기준 재조정 등을 요구했지만 의원들은 외면했다. 지난 3일 이 국회 청원을 논의한 국회 법사위 제1 소위원회 회의록 내용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n번방 사건을 잘 모르겠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처벌)갈 거냐” “일기장에 혼자 그림을 그리는 것까지 처벌할 수 없지 않나” 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젠더와 인권에 무지·무감각한 국회의원과 고위 공무원들의 민낯에 기가 막힌다. 

디지털 성범죄는 인격살인인 만큼 중대 범죄로 엄벌해야 한다. 또 디지털 성범죄는 일회성 처벌로 해결할 수 없다. 당초 문제를 일으킨 n번방이 단속을 받자 피의자들은 다른 온라인 메신저 등으로 이동해 방을 만들었다. 플랫폼만 바꿔가며 더욱 교묘하게 범죄를 이어가는 것이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이다. 근본적으로 해결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찰은 24일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이 사건의 주범 조씨의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추가 피해와 유사 범죄를 막기 위해선 범행을 주도한 인물들의 신상정보 공개는 당연하다. 불법영상물을 단순 열람하는 행위 등을 포함해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정치권은 이번 사건을 총선용으로 이용할 생각만 하지 말고 제대로 된 입법으로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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