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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코로나 상춘

opinionX 2020. 3. 24. 11:1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올해는 봄이 오지 않겠거니 생각했다. 와도 더디 오리라 믿었다. 그런데 성큼 왔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왔듯이, 코로나19 속에서도 봄은 어김이 없었다. 봄은 여러 빛깔로 다가왔다. 화엄사의 홍매화가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자, 한양도성 성곽길의 산수유가 질투하듯 노란 봄소식을 전했다. 서촌 한옥 마당의 키 큰 목련은 하얀 꽃송이를 주렁주렁 내걸었다. 남녘에서는 벌써 꽃 잔치가 시작됐다. 구례 산동의 산수유 마을은 온 동네가 노랗다. 제주 시내 벚나무 가로수는 모두 연분홍으로 변했다. 곧 개나리·진달래가 산하를 물들일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봄이다.

봄꽃이 피면 사람들은 꽃구경에 나선다. 봄을 즐기는 상춘 나들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530년 전 벼슬을 던지고 낙향한 정극인은 <상춘곡>에서 봄날의 흥겨움을 노래했다. 그뿐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춘기(春氣)을 떨쳐내지 못해 꽃을 찾아나섰다. 조선시대 탐화(探花)·상화(賞花)의 기록은 적지 않다. 왕조실록 1792년 3월20일조에는 정조 임금이 인왕산의 상춘 행사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풍속지 <열양세시기>는 한양의 상춘 명소로 남산의 잠두봉, 인왕산의 필운대와 세심대를 꼽았다.

지난주 매화꽃이 만발한 광양 매화마을에는 상춘객 수십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구례 산동에도 산수유꽃을 보려는 인파로 북적댔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매화축제·산수유 축제를 취소했는데도 상춘객들이 몰려든 것이다. 문제는 상춘인파가 또 하나의 감염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산수유 마을을 찾았던 60대 3명이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다. 추가 감염이 우려되는 속에서 경남 창원시가 이번 주말 예정된 군항제를 전면 취소했다. 다른 지자체들도 속속 봄꽃축제를 접고 있다.

상춘을 탓할 수는 없다. 봄꽃 나들이는 감염병으로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전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인파 밀집장소는 피해야 한다. 굳이 봄꽃 명소를 찾는다면 거리 두기를 한 채 걷자. 자동차를 탄 채 즐기는 ‘드라이브 스루’ 상춘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명소보다는 집 주변에서 소소한 봄꽃을 즐기는 일이다. 찾아보면 숨어 있는 상춘 명소는 얼마든지 있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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