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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치가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이지, 정치인들이 잘살라고 있는 게 아닌데 지금 과연 정치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가 자문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소위 ‘경제활성화’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며 국회를 강하게 압박한 것이다. “이것을 전부 정부 탓으로 돌릴 것이냐”라고 반문하면서 “정치권 전체가 책임질 일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세월호특별법안을 8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못 박았다.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특별법을 놓고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사회의 반발로 논란이 일고 재협상론이 뜨거운 상황에서 직설적으로 ‘입법 지침’을 하달한 셈이다. “말로만 민생” “우물 안 개구리” 등의 표현까지 동원한 박 대통령의 발언은 무척 호전적이다. 여당을 ‘청와대 출장소’쯤으로 삼고, 국회를 ‘통법부’ 정도로 간주하고, 야당을 대화와 타협의 상대로 여기지 않는 반(反)정치의 독단이 어른거린다.
입법권은 새삼 거론할 것도 없이 국회의 고유 권한이다. 대통령이 정부 제출 법안이 의도대로 통과되지 않는다고 눈을 부라리며 국회를 겁박하는 것은 입법권 무시다. 더욱이 박 대통령이 열거한 ‘경제활성화’ 법안의 상당수는 사회적 논란이 많다. 실제 민생과 일자리 창출 등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적 효과를 낳을 수 있는지 치열한 심의가 동반되어야 할 사안이다. 대표적으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반대 여론이 압도적인 ‘의료영리화’를 위한 포석일 수 있고, 크루즈산업지원법은 세월호 참사에서 폐해가 확인된 해상의 무분별한 규제완화 문제와 연결된다. 일부 법안의 통과를 빌미삼아 경제살리기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국정의 무한 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의 언어가 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국가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세월호 참사, 그 진상을 밝히고 책임 소재를 규명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정치의 책무를 비켜갈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눈물로 참회하며 이른바 ‘국가 혁신’과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약속했다. 세월호 참사 넉달이 다 되도록 아무런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실을 규명해 안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목숨을 건 농성을 하겠는가. 어느새 박 대통령에게서 ‘세월호’는 사라졌다. 박 대통령은 “지금 과연 정치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되묻고 싶다. 지금 과연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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