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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민들이 이제 새정치민주연합에 희망 걸기를 포기하고 있는 듯하다. 세월호 참사와 인사 참사 등을 통해 정부·여당의 무능과 실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에도 시민들은 새정치연합을 대안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이 6·4 지방선거에서 밝혀졌다면, 이젠 아예 새정치연합을 버리려 하고 있음이 7·30 재·보궐선거에서 확인된 것 같다. 광주·전남은 87년 체제의 성립 이후 단 한 번도 보수 정당 후보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준 적이 없는 강성 진보 지역이다. 민주당 계열 정당의 거점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이 ‘전략’ 공천한 후보가 전국 최저 투표율(22.3%)의 광주 광산을에서 겨우(?) 60.6%의 득표율로 당선된 것과 새누리당 후보가 전국 최고 투표율(51%)의 전남 순천·곡성에서 새정치연합 후보를 꺾어버렸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겠는가? 전자는 시민들은 이제 새정치연합에 별 관심이 없음을, 후자는 새누리당에 오히려 기회를 또다시 주려 한다는 의미로 읽히지 않는가?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12일 새민련 박영선 위원장의 세월호특별법 합의안에 반발해 '박영선은 여당인가? 야당인가?'라고 적힌 문구를 국회 본청 앞 기둥에 붙여 놓고 있다. (출처 : 경향DB)


특히 후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이는 2012년의 대선국면 상황을 상기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당시 이른바 민주·진보·개혁 진영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거의 완벽한 단일대오를 구성하여 한국 정치사상 최초로 거대 보수파와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들었다. 그 배경에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라는 시대정신의 부상이 있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불거진 무상급식 이슈를 계기로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국민담론 수준으로 발전해갔고, 이는 정치권에 수렴되어 대선이 보수-진보 양 진영의 대표 격인 새누리당과 민주당 간의 일대일 정책 대결 양상으로 전개되도록 하였다. 대선 공약의 질로만 보자면 누가 보아도 민주당이 이겨야 했다. 예컨대, 민주당의 공약들은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권리로서의 복지를 강조한 반면, 새누리당의 것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이며 잔여적인 복지 제공을 목표로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시민들이 새누리당에 표를 주었다. 공약의 이론적 정합성이나 질적 수준보다는 현실적인 복지 제공능력을 더 중요하게 본 것이 아닐까? 민주당의 공약이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그 실천능력에 의심이 간다면 그 당에 투표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공약 내용은 다소 부실할지라도 그 수행능력만큼은 믿을 수 있다면 새누리당에 투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얻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한국의 지배집단이 재벌·대기업·부유층 등 시장세력, 그들과 연계돼 있는 정계·관계·언론계·종교계·학계 등에 포진해 있는 보수 기득권 세력임을 모르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토로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진보파 정권이 들어선들 이 막강한 시장권력이 제대로 통제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도 그들은 잘 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생생히 목격한 바가 아니던가. 민주당의 집권이 복지국가의 발전을 보장하는 게 아닐뿐더러, 오히려 시장권력과의 내통이 가능한 새누리당의 집권이 복지 강화에 도움이 되리라는 유권자 인식이 새누리당 승리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지난 대선 결과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면, 작금의 새누리당 우세 상황도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새정치연합이 대안 정당으로서 시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획득할 수 있는 길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홀로서도 시장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세력의 정치권력 독과점이 가능한 지금의 정치구도를 (시민들이 도와만 준다면) 확 바꿔버릴 수 있는 방안과 전략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앞의 것은 어렵겠지만, 뒤의 것은 아직 가능하다. 안철수 현상의 요체도 바로 ‘새정치’에 대한 기대가 아니었던가.

이제 새정치연합은 ‘시장에 맞서는 정치’를 제도화할 수 있는 개혁방안과 실천 로드맵, 그리고 그 일을 주도해갈 개혁 주체를 선보여야 한다. 내년 전당대회가 그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듯싶다.


최태욱 | 한림대 국제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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