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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재·보궐선거 결과는 수렁에 빠진 한국 정치의 현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여당이 몇 석 얻었느냐, 야당이 몇 석 얻었느냐도 중요하지만, 선거에서 무엇이 쟁점이 되었는지도 중요하다. 그런데 뭐라고 얘기할 것이 없다. 선거를 앞둔 7월18일 쌀 수입을 전면 자유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발표되었지만, 이것도 선거판의 주요 쟁점이 되지 못했다. 국내 농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지만, 전체 선거판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이슈로 묻혀 버렸다.

여야가 정책으로 구분되지 않는 현상은 여전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큰데도, 원전에 대해서조차 후보 간의 차별성이 없었다. 예를 들면, 전남 장성·담양·함평·영광에서 당선된 새정치민주연합의 이개호 후보는 노후원전의 폐쇄 여부를 묻는 환경운동연합의 질의에 대해 ‘주민 의견 수렴 후로 답변 유보’라는 애매한 대답을 했다. 새누리당 후보 중에서도 ‘노후원전 즉시 폐쇄’라고 답변하는 후보가 있는데, 원전지역인 영광에서 출마한 야당 후보가 이런 답변을 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처럼 양대 정당은 정체성도 불분명했고, 정책보다는 철저하게 선거공학에 의존한 정치로 일관했다. 그래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자신이 살지도 않는 지역에 갑자기 전략공천을 받은 후보가 속출했다. 인지도 높은 후보를 내리꽂고 선거구도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가장 효과적인 선거전략이 되는 순간, 정치에서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은 극히 적어진다.

거대 양당은 여야를 불문하고 지역개발 공약을 내세우며 표를 얻으려 했다. 전남 곡성·순천에서 당선된 이정현 후보가 지역주의를 깼다고 평가하지만, 이정현 후보는 ‘예산폭탄’ 운운하며 지역구 예산을 챙기겠다는 것을 내세워 당선됐다. 야당 후보들 중에도 개발 공약을 내세운 후보들이 많았다. 국가의 비전과 정책을 고민해야 할 국회의원의 역할은 안중에도 없었다. 시장 선거인지 국회의원 선거인지 헷갈리는 상황들이 벌어졌다.

양당 구도하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좌절됐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출신으로 평택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득중 후보는 진보정당들과 녹색당의 지지를 받으며 선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5.6%의 득표에 그쳤다.

비오는 날에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지방선거 공약이 담긴 판을 들고 있는 녹색당원 (출처 : 경향DB)


이번 재·보선 결과를 보며, 한국 정치가 양대 정당이 지배하는 정치로 고착되어도 될까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그러나 양대 정당이 지배하는 정치는 ‘최악의 정치’로 흐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둘 중에서 차악을 고르자고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런 정치는 ‘최악’으로 귀결된다. 미국과 대한민국이 그것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날로 심각해져가는 빈부격차와 인간의 존엄을 갉아먹는 빈곤은 거대 양당 중심의 정치가 낳은 산물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 기후변화·원전의 위험과 같은 생태위기의 문제, 농업과 식량주권의 문제, 소수자 인권문제도 이런 정치에서는 중요하지 않게 취급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확고한 자기비전을 가진 정치세력이다. 그런 세력은 지금 소수정당일 수밖에 없지만, 소수정당 없이 ‘좋은 정치’란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지긋지긋한 양대 정당 구도하에서 우리 삶의 문제, 시대의 문제를 풀 수 있었던가? 물론 현재 소수정당들의 상황에 대해서는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양대 정당이 지배하는 정치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비례대표제의 전면 확대, 교사·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 유권자들의 활발한 정치참여 보장, 투표권 연령 하향조정 같은 정치제도 개혁도 마찬가지다. 이런 제도 개혁이 정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기존의 양대 정당에 이런 문제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런 과제들을 집요하게 주장하고 실천할 주체는 정치의 영역에서는 소수정당일 수밖에 없다.

복지국가 스웨덴에서는 좌파에서 우파를 망라하는 정당들이 있고, 녹색당까지 8개의 원내 정당이 활동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덴마크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치의 변화를 위해서는 소수정당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하승수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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