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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5일 외국인만 진료한다는 조건을 달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영리병원 개원을 허가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공론조사위원회의 (불허 권고) 결정을 수용하지 못해 죄송하다”면서도 “하지만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건강보험 등 국내 공공의료체계에는 영향이 없다”며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했다. 이로써 지난 16년 동안 찬반 논란이 일어온 영리병원 허용 문제가 일단락됐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제주도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영리병원이 건강보험제도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리병원은 김대중 정부 당시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법제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지만 투자자가 없거나 국내 반대 여론에 밀려 계속 미뤄졌다. 그러다 2015년 12월 보건복지부가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녹지그룹의 녹지국제병원 사업 계획을 승인했고, 이후 3년간의 논의 끝에 이번에 최종적으로 개원하게 됐다. 외국 자본과 국내 의료자원을 결합해 외국인 환자들에게 종합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용을 창출하고 해외환자를 유치하자는 취지는 부인하지 않는다. 병원을 다 짓고 의료진까지 고용한 마당에 개원을 허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제주도의 사정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영리병원 개원은 그리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우선 성형외과와 내과 등 4개 진료과목에 한정해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진료한다는 전제 자체를 지키기 쉽지 않다. 모든 의료기관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진료를 거부할 수 없게 돼 있는 데다 온갖 편법으로 내국인이 진료받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 의료보험체계의 적용을 받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는 그 자체로 위험하다. 여기에 인천 송도를 비롯한 전국 8개 경제자유구역 등도 영리병원 유치를 노리고 있다. 제주를 계기로 이들 특구에까지 영리병원을 허용한다면 건보 시스템은 그야말로 근간이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다.

시민들은 이 전인미답의 영리병원 실험을 지켜볼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영리병원이 의료 공공성을 약화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또 외국자본이 국내 시설을 이용해 돈만 버는 일이 벌어지거나 국내자본을 우회 투자해 돈벌이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와 제주도는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 특히 원 지사는 공론조사위의 결정을 거부한 만큼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할 무거운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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