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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평화와 국민을 위하여 혼신을 다하시는 대통령께 깊은 존경을 전합니다. 새로운 한 해를 목전에 두고 현장의 한 사람으로서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다시 글을 씁니다. 시간이 되시면 우리들의 교실로 와주십시오. 조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어린이, 청소년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그들의 절망과 비탄, 자조와 자해로 인해 조절하기 힘든 감정 상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교실에 오신다면, 한 시간째 울음을 멈추지 않는 초등학생을 만날 수 있고, 한 번 폭발하면 ‘마블 어벤져스’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교실과 학교를 초토화하는 괴력의 아이들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또 일명 ‘바코드’라 부르는 손목 긋기 자해를 시작한 초등 고학년 여학생도 만나실 수 있는데, 그 아이들의 조숙함에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겁니다. 초등 4학년이지만 나름의 소신으로 수학 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수포자 학생도 만나실 수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힘들어하는 한 명의 교사를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만일 중학교에 가신다면, 입을 열면 욕부터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한때 북한군들도 두려워했다는, 예측불허의 히어로즈 중학생들을 만나실 수 있고, 좌충우돌하며 게임에 절고, 야동, 야툰, 야설의 주구독자이면서, 스마트폰을 놓을 줄 모르는 아이들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유행처럼 번지는 자해의 문화가 관통하는 세대가 바로 이 중학생 세대입니다. 보도된 자해 학생만 대한민국에 7만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 중 상당수가 중학생이며, 고어물과 같은 잔혹하고 끔찍한 자해 및 사혈사진과 동영상을 올리면서 피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극심한 자기혐오의 첫 세대들입니다. 이 황야의 무법자 같은 아이들이 교실 도처에 삐딱하게 앉아 있고 그곳 어딘가에 역부족을 안타까워하는 한 분의 교사가 서 있습니다. 모든 고등학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고등학교는 폐허, 늪 같은 분위기입니다. 무기력감 속에 깊이 빨려들어가 있는 아이들을 곳곳에서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고1 교실보다 고3 교실에 가면 학교에서 자고 가는 아이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한 어른을 만나실 수 있는데, 그분은 독백전문 배우 혹은 혼잣말 토크쇼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우울의 강 아래로 가라앉고 있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이들이 불안에 흔들리고, 어른이 될 수도 없지만 되기도 두렵다는 마음을 털어놓기 일쑤입니다.

만나보면 아시겠지만 미래의 희망인 아동, 청소년들의 감정은 현재 조절 곤란 상태이거나 폭발 전후이거나 혹은 무기력, 해리 상태입니다. 정신과 의사 단 시겔이 미국 청소년들의 정서조절 곤란 상태를 걱정한 것보다 우리 아이들이 더 심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시민운동가 파커 파머가 미국의 많은 청소년들이 뇌사 상태처럼 지낸다고 비평한 것보다 우리 아이들이 더 마비된 상태로 느껴집니다. 2018년 여름 이후 여학생들의 자해와 남학생들의 분노폭발은 일상에 가까운 현실처럼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마른 광야에 들불이 번지듯이 퍼지고 있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정서 불안정의 시대, 감정조절 곤란의 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되는 해체사회로 깊숙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시급한 것은 국가가 이 사태에 응답해주는 것입니다. 사춘기가 지나기도 전에 자해하거나 폭발해서 인생을 끝장내는 극도의 감정조절 곤란 상태가 중단되도록 해야 합니다. 작금의 자기혐오에 기반한 자해와 피해의식에 따른 분노폭발의 전염을 차단하고, 중화하고 치유할 대책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다잡고 챙기면서, 심사숙고와 배려 속에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선언을 해야 합니다. 학교마다, 마을마다 폭발하고 자해하는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조치를 실사구시하여 실행하고 무엇보다 응답하고 공감해주는 정부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력한 청년들의 하류화된 사회, 어른은 없는 노인들의 무기력 사회로 또 한 계단 내려가는 삶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럼 답장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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