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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DMZ). 한국 사람들에게는 현대사의 모든 기억이 교차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나는 유학을 준비하던 시절 미국 시카고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에게 이메일로 관련 문의를 하면서, 군 복무 시절 전방 지역에서 근무했던 경험 등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학창시절 그가 저술했던 화제작 <한국전쟁의 기원>을 읽으며, 여러 부분에 대해 동감도 했고 반대의견도 가졌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답장을 기대하지 않고 보낸 이메일이었다. 놀랍게도 일면식도 없는 한국의 젊은이에게 커밍스 교수가 보내준 답은 인상적이었다. 자신은 DMZ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뛰고 감정이 벅차오른다면서, 태평양 건너 얼굴도 모르는 한국의 젊은이에게 장문의 답장을 보내주셨다. 사실 당시에 서방의 한국전문가가 DMZ에 대해 그토록 벅찬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이 생소하게 다가와서 답장을 받던 날 한국인에게 DMZ는 어떠한 역사적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는지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그날은 커밍스 선생님과 막역한 사이로 발전하게 되는, 아름다운 사제의 인연이 시작된 출발점이었다. 물론 여전히 우리는 끊임없이 한반도 현안에 대해 다른 의견들로 갑론을박한다.

최근 남북군사합의를 둘러싼 담론의 양상은 정치화를 넘어서 국론 분열의 위험 수위까지 다다르고 있다. 이 모든 담론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전략에 근본적으로 동의하는지, 이 대북전략이 목표를 성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지가 핵심일 것이다. 사실 군비통제는 어느 시대이고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오랫동안 신뢰하지 않았던 상대방을 믿고, 제 살 깎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당사국의 군부와 보수층에는 비판을 받는 인기 없는 정책 옵션이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 간 군비 통제나 데탕트 전략이 시도될 때, 이를 추진하는 미국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반대파들로부터 색깔론과 함께 유약한 이상주의자라는 비판을 늘 받아왔다. 더욱이 한국처럼 지정학적으로 안보에 취약한 환경 속에서 북한의 도발을 오랫동안 경험해 온 상황에서, 군비통제는 늘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남북군사합의에 대한 논쟁은 근본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전략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비롯된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대전략은 지난 10여년간의 대북정책옵션, 즉 국제경제제재로 인한 북한 붕괴론이라는 신화에 대한 반성론과 ‘코피전략’ 등의 군사적 옵션 등에 대한 회의론에서 출발해 추진되고 있는 접근법이다. 이 대전략의 목표는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동참시켜, 북한이 다시 도발한다면 지금보다 감내해야 하는 피해가 수백배, 수천배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를 주도적으로 이룩하자는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이 심해지는 상황 속에서, 슈퍼그리드-에너지협력-나비프로젝트 등 동북아 협력을 강화시키고, 이에 북한을 동참시켜 경제적 실익을 얻게 하고, 나아가 이를 동북아시아 다자안보체제가 구축되는 토대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그 비용이 크지 않다면, 제재를 하면서 북한 핵·미사일 실험을 방관해오던 시절보다 시도할 만한 전략일 것이다. 지금의 한반도 정세 변화가 시작된 지는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다. 기대치가 높은 만큼 관심과 비판이 많다. 그러나 대안 없는 비판이 과열되면 개별 쟁점의 정치화는 물론이고 국론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 여러 부족한 점들이 있더라도 대전략 차원의 접근법이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믿고 차분하게 지혜를 모을 때이다. 그리고 비판할 때 정책 대안을 갖고 담론에 참여한다면 그 담론이 정책 대안을 발전시켜 장차 정치화되지 않은 생산적인 담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군사합의에 대해서는 앞으로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보완과 수정, 조치 이행 확인들이 협의되고 진행될 것이다. 추진된 정책에 대하여 좀 더 냉정하고 차분한 자세로 기다리고 평가하는 성숙된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서방에서는 ‘악의 지도자’와 어떠한 타협도 용서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소위 ‘체임벌린(히틀러에 대해 유화정책을 폈던 영국 총리) 학습효과’가 있다. 이는 북한을 대할 때 서방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역사적 사례이다. 히틀러를 막지 않고 타협하려 했었기 때문에 홀로코스트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더 중요한 역사적 사례를 잊고 산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창설하고자 하였던 국제기구(League of Nations) 창설이 미국 내 강경파의 반대로 백지화된 것이다. 그 당시 국제기구가 1차 세계대전의 교훈을 바탕으로 창설되었다면, 2차 세계대전은 발발하지도 혹은 그토록 비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우리가 체임벌린 교훈만큼이나 윌슨 교훈을 잊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김영준 국방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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