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보수 개신교계가 어제 종교인 과세 시행을 2년 유예해달라고 정부에 공식 요구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교회연합, 한국장로교총연합회는 공동입장문을 내고 “과세를 강행한다면 심각한 조세저항과 정교갈등을 낳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입장문은 김동연 부총리가 종교인 과세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시민들의 공평 과세 요구를 무시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참으로 뻔뻔한 주장이다. 저항, 갈등 등 분열을 조장하는 표현까지 동원한 것은 정부와 시민사회를 겁박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을 찾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인 엄기호 목사와 종교인 과세(소득세법 개정안) 관련 면담을 하기 전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에 따라 마땅히 시행됐어야 할 종교인 과세가 수십년째 헛바퀴를 돈 것은 신앙을 앞세운 일부 종교단체들의 오만함과 이를 비호해온 정치권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정치권이 뒤늦게 2015년 12월 세법 개정안을 만들었지만 그나마 시행일은 2018년 1월1일로 유예한 터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유예를 거론하는 것은 염치없는 행위이다. 이는 “종교인 과세는 시종일관 지지”(자승 총무원장), “종교인들이 과세에 반대한 것으로 오해받을까 걱정”(김희중 대주교)이라는 불교계·가톨릭계의 입장과도 대비된다. 세무조사와 관련한 주장도 납득하기 힘들다. 엄기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은 “세무조사 때문에 종교활동이 저해될 수 있다”며 “탈세 제보가 있으면 각 교단에 이첩해 자진납부하게 하고, 세무공무원이 개별 교회와 종교단체를 조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탈세를 묵인해달라는 얘기로, 교회를 정부의 윗자리에 놓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오만한 발상이다.

현행법에 ‘국세청은 공익법인 등이 출연받은 재산을 공익 목적으로 썼는지 언제든지 조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교회는 공익법인으로 분류돼 있다. 한국 교회가 위기에 처한 데는 불투명한 재정관리가 큰 원인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때마침 어제 진보성향 개신교 교단 협의체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종교단체가 투명하게 세금을 신고·납부한다면 세상을 향해 담대한 꾸지람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참된 정교분리의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는 고언이 나왔다. 공감되는 말이다. 종교인은 무법과 불법의 영역에서 사는 존재가 아니다. 과세 유예의 특권을 요구할 자격도 이유도 없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