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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곡수매’는 귀에 익어도 ‘하곡수매’는 낯설다. 늦가을에 파종하여 여름에 거두는 하곡의 대표작물은 맥류로 분류되는 보리와 밀이다. 추곡의 대표작물은 쌀이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추곡수매도 폐지된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곡물 중에서도 가장 먼저 정부 수매가 폐지된 작물은 밀이다. 미국밀이 지천에 흔하던 때에도 밀 수매가 이루어져 그나마 희미하게 밀농업이 유지되었다. 하나 그마저도 귀찮았는지 전두환이 1984년 밀 수매를 중단하면서 밀농사는 완전히 맥이 끊길 지경이었다. 그러나 몇몇 농민이 한 알의 밀알이라도 계속 채종하여 심어온 덕분에 지금 우리밀의 뿌리를 지켜냈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토종밀을 얻어다 키운 사람들 중에 백남기 농민도 있었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살이를 했던 백남기 농민은 징역살이를 끝내고 자신의 고향 보성군 웅치면 부춘 마을에 내려와 5,000평의 밀밭을 꾸렸다. 1989년 보성의 첫 우리밀 생산자는 백남기 농민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故) 백남기 농민

0.2%니 0.1%니 하는 의미 없는 소수점 수준의 자급률이었던 밀이 절멸할까 걱정스러워 농민과 시민들이 손을 맞잡고 겨우 지켜낸 것이 ‘우리밀’이다. 그 노력 끝에 이제 밀 자급률은 1% 남짓이다. ‘우리밀’이란 예쁜 이름이 보통명사가 된 것도 1990년대 초반 벌였던 ‘우리밀살리기운동’에서 비롯되었으니 우리밀은 쌀과 더불어 식량자급의 큰 상징이자 자부심이다.

그런 우리밀이 또 수난시대를 맞이했다. 쌀값 하락과 2008년 세계의 곡물파동으로 이명박 정부는 쌀 대체작물로 우리밀을 주목했다. 농민들에게는 이모작으로 소득증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 하면서 우리밀 자급률을 10%로 늘리겠다는 허언을 날렸다. 식량자급률이 말로만 올라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비자들이 즐겨 먹을 수 있는 형편을 마련해 놓지 않으면 별무소용이다. 이유는 우리밀이 수입밀보다 3배 비싸고 가공 활용도가 낮아서다. 아니 반대로 수입밀은 싸고 산업원료로 오래도록 기능해왔기 때문이다. 한때 <제빵왕 김탁구>라는 드라마 열풍과 수입밀 가격 폭등으로 대형 제과회사들도 우리밀에 관심을 두기도 했다. 대형 제과기업이 우리밀을 사들이면서 잠시 품귀현상도 있었으나 딱 한철에 그치고 말았다.

작년 우리밀 자급률이 고작 1.6% 정도로 올라오니 바로 재고로 쌓여 우리밀 생산자들이 헉헉거리는 중이다. 대체 무슨 배짱으로 우리밀 자급률 목표를 10%로 잡았던 것일까. 하긴 그 안에 목표 자급률은 5.1%로 후퇴했고 이제 그마저도 흐지부지될 모양이다. 그동안 정부는 목표 자급률을 맞추기 위해 질보다는 양에 치중한 정책을 펼쳐왔다. 그래서 맛과 활용도 면에서 떨어지는 ‘다수확’ 품종인 백중밀 보급에 집중해 왔다. 그렇다 보니 소비 진작이 되지 않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 하지만 그나마 백중밀도 밀쳐놓고 이제 농정당국은 ‘적정생산량’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 우리밀 농사는 여기에서 멈추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뜻으로 읽힌다.

백남기 농민의 1주기가 열흘 앞이다. 2015년 11월, 밀 파종을 마치고 서울 민중대회에 참가했다가 쓰러지면서 손수 갈무리하지 못한 ‘백남기 우리밀’. 그 씨앗을 받아 동료 농민들이 우리밀 농사를 짓고 있다. 그의 숨결이 담긴 ‘백남기 우리밀’ 세트가 절반도 안 팔렸다는 애타는 소식을 들었다. 올 추석은 ‘백남기 우리밀’로 백남기 농민의 뜻도 기리고 우리밀전이라도 부쳐보면 어떨는지.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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