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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파리, 베를린, 워싱턴, 베이징, 도쿄 등 국가 수도들은 중앙공원이나 매머드 문화벨트에 세계적인 박물관들을 세웠다. 자국의 문화,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국민에게 심어주고 일체감 조성은 물론 수도를 찾는 세계인에게 자국의 문화사를 알림으로써 보이지 않는 문화전쟁의 첨병 역할을 수행한다.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고도인 서울의 문화전쟁터가 국립민속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은 연평균 300만명이고, 1993년 2월 개관 이후 현재까지 7200만명이 넘는다. 그 가운데 60% 이상인 4300만명이 외국인이다. 한국과 서울을 찾는 외국인 10명 중 6명은 반드시 다녀가는 대표적인 문화명소로서의 역할을 튼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고고, 역사, 미술품을 중심으로 우리 문화의 우측 수레바퀴 역할을 수행해 왔다면 국립민속박물관은 의식주를 비롯한 생활문화 전반을 담는 좌측 수레바퀴 역할을 하면서 한국 문화 반만년을 연구 및 전시하고 세계로 발산하는 기능을 맡아 왔다. 전자가 지역분관 13곳과 어우러져서 빛나는 고급문화사를 보여준다면, 후자는 외롭게 홀로 끈질긴 민중문화사를 담당해왔다.

적폐의 기나긴 세월을 슬기롭게 살아왔던 삶의 유산이 민속에 녹아있고, 그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전시하는 곳이 민속박물관이다. 찬란한 역사가 이어져온 후면부에서 처절한 삶을 지켜온 한국 문화의 향기를 느끼게 하고 한국인의 삶 속으로 한발짝 깊이 끌어당기는 곳이 국립민속박물관이다.  한민족 역사의 과거·현재·미래를 밝혀줄 문화의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 국립민속박물관의 쓰임이었다. 강력한 지방분권을 추진하려는 문재인 정부는 이제 서민문화의 저수지 역할을 해온 지방문화에 대한 배려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방분권의 주인들이 누구인가? 그들이 지켜온 삶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정치역량의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이며, 국립민속박물관의 지역분관 건립이 그 실천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민속박물관의 사회적 소명과 소임, 문화적 기능과 책임은 광대무변하다. 앞으로도 꺼지지 않는 문화의 용광로를 발산시키며 불확실성 속의 미래 한국을 지켜갈 책무를 다하길 꿈꿔왔다. 경복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2030년 국립민속박물관을 이전하기 위해 오랫동안 검토하고 계획했던 곳은 용산공원의 핵심지역이었다. 민중문화사가 꿈을 이루게 되는 희망지로서 용산공원이 선택되었다. 이는 110여년 동안 외국군대가 주둔했던 곳에 민족의 문화적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국민적 의지이다. 김대중 정부의 핵심 어젠다로서 역대 장관들이 내세운 정책과제로, 2000년 문화정책개발원, 2001~2002년 문화관광부 이전건립 연구, 2002년 KDI 예비타당성조사, 2007년 문화관광연구원, 2011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정책보고서에 담겨진 핵심 내용들이다.

장기간의 착실한 준비과정을 ‘정권 바뀌었다’고 간단히 뒤집을 수는 없다. 세종시는 행정수도임은 물론 문화수도로 거듭나고자 2007년부터 새로운 박물관 단지를 조성 중이다. 세종시에 국립박물관을 건립하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세종시는 기능을 달리하는 문화기관을 준비해야 하며, 2007년부터 논의하고 준비해온 ‘세계어린이민속박물관’을 국립민속박물관의 분관으로 추진하는 것이 그 방안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세계인에게 한국 문화를 전파할 대표주자로 소명된 대한민국 절대다수 국민의 문화자산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세종시 이전’이란 중차대한 결정은 국정자문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전유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회에서 논의되거나 국민 여론조사, 국민토론을 거쳐서 결정되어야 할 정책이다. 국민소통에 천부적 감각을 지닌 문재인 정부가 문화의 황금알을 낳을 거위를 잘 사육하리라 확신한다. 세종시 이전 계획을 폐기하고, 용산공원 핵심지역에 무지렁이 서민으로부터 피어오른 민중문화의 향기를 느낄 국립민속박물관 이전을 확고부동하게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지방분권과 함께 서울로부터 지방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의 뜻을 확산시켜야 한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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