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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이 사망한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고시원 화재 참사에서 살아남은 거주자들 상당수가 인근 다른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기고 있다고 한다. 종로구청이 서울형 긴급복지 사업에 따라 이들에게 1개월 동안 임시거처 마련 비용을 지원하는데, 이들이 갈 만한 곳은 다른 고시원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로 옮긴 고시원이라고 특별히 더 나을 리 없다. 지옥의 화마에서 간신히 벗어난 피해자들이 언제 또 어떤 사고로 죽음으로 내몰릴지 모를 곳으로 다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고는 우리 사회의 ‘최후의 거주지’인 고시원으로 몰리는 주거취약계층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실시한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적으로 1만1000여개에 달하는 고시원에 15만2000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거취약계층이 급증하면서 최근 7년 새 고시원은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고시원뿐 아니라 쪽방, 숙박업소, 비닐하우스 등 주택으로 분류되지 않는 취약한 주거지에 살고 있는 이들은 37만가구에 달한다. 이들 상당수는 보증금 몇백만원과 월세 몇십만원을 마련할 수 없는 저소득층이다. 실제 관수동 고시원 화재 참사에서 숨진 7명 중 4명이 기초생활수급자였다.

11일 오전 지난 9일 새벽 화재로 7명이 사망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앞에 시민들의 추모 꽃과 글들이 놓여져 있다. 김기남 기자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취약계층, 고령자 주거지원 방안’에는 주거환경이 열악한 노후 고시원 등을 매입해 양질의 주택으로 개선한 뒤 저소득 가구에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여기에 입주할 수 있는 주거취약계층도 한정돼 있다는 것이 주거 관련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이번 고시원 참사 피해자들도 종로구청이 긴급 주거지원 대상으로 인정하면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주택사업자들이 보유한 인근 미임대 공공임대주택으로 입주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피해자들이 임대주택 보증금과 월세를 낼 여유가 없으면 고시원을 벗어날 수 없다. 공공임대주택에도 들어가기 힘든 주거취약계층이 적지 않은 것이다. 공공임대주택의 문턱을 낮춰 보다 많은 주거취약계층이 입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당장은 현재 수십만명이 살고 있는 고시원이나 여관, 쪽방 등 주거취약계층 거주시설에 대한 화재 안전 점검과 관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난 9일 이번 참사를 추모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한 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에서는 ‘지하도는 불이 나면 도망이라도 갈 수 있지만 고시원은 도망갈 곳도 없어 고시원을 나왔다’는 증언이 소개됐다. 차라리 지하도에서 노숙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취약 주거시설의 실태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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