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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자신의 판관이 될 수 없다”는 법언이 있다. 사건의 이해 당사자가 그 사건의 판관이 되었을 때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최근 그 진상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양승태 대법원장하의 법원행정처 사법농단 의혹사건을 재판할 특별재판부법을 만드는 일도 이러한 법언을 실천하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별재판부법안을 발의한 박주민 의원에 의하면,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 사법농단 사건의 배당 가능성이 높은 형사합의부의 부패전담부 재판장 7명 가운데 5명이 이 사건과 관련해 수사나 조사의 대상이 됐으며, 서울고등법원의 경우에도 이 사건이 배당될 가능성이 있는 14개 형사합의부의 판사 42명의 40%인 17명이 재판에서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대미문의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재판이 보다 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재판’으로 진행되게 할 목적으로 탄생한 법안이 바로 특별재판부법안이다. 이 법안은 사법농단 사건 재판을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1개 이상, 서울고등법원에 1개의 특별재판부를 각각 두는 것이 골자다. 그리고 특별재판부의 재판관들을 추천하기 위한 후보추천위원회를 두고 이 위원회는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한 3명, 두 법원의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3명, 변호사 자격을 가지지 않은 각계 전문가 3명으로 구성한다. 대법원장은 이 추천위원회가 추천한 2배수의 현직판사 후보자 중에서 특별재판부 재판관을 임명한다. 그런데 이 특별재판부법안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 위헌이라는 주장들이 들린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첫째, 헌법상의 삼권분립원리에 위반해 법원의 사건 배당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통상적인 상황이라면 사건 배당권을 법원에 주는 것이 옳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의 적지 않은 판사들이 이 사법농단 의혹사건이나 사건 당사자들과 직·간접적인 연관을 갖고 있는 특수상황이다. 이러한 특수상황에서 사건이나 사건 당사자와 이해관계가 없는 객관적인 현직 법관들을 추천받아 특별재판부를 구성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를 가지는 사법부의 사건 배당권에 대한 일시적 제한일 뿐 권한 침해로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국민의 대표인 입법부가 입법권을 통해 사법부의 재판부 구성 등 사법행정권 행사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견제하는 것은 삼권분립원리 위반이 아니라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을 이상으로 삼는 삼권분립원리의 한 제도적 실천이 된다. 현직 법관들로 특별재판부를 구성하기 때문에 헌법상의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 위반도 아니며, 현재의 법원 내에 특별법원이 아니라 특별재판부를 두면서 대법원이 최종심을 맡게 되기 때문에 심급제도와 충돌하지도 않는다.

둘째, 특별재판부 재판관 후보추천위원회 구성에 변호사 단체와 학식 및 덕망 있는 비법조인을 참여시켜 법원 외부에서 재판부 구성에 관여하게 되면 사법부의 법관인사권이 침해되고, 외부 인사들의 추천을 통해 정치적 편향성이 있거나 유죄의 예단을 갖고 있는 법관이 특별재판부에 들어올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추천위원회와 특별재판부 자체를 혼동해선 안 된다. 대법관 추천위원회에도 다수의 외부 인사들이 참여하지만, 이것이 위헌 논란에 휩싸인 적은 없었다. 후보추천위원회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는 것은 특별재판부의 재판관 후보를 추천하는데 법원 내부뿐만 아니라 법원 외부의 객관적 목소리를 담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추천위원회가 추천한 2배수의 후보 중에서 최종적으로 재판관을 임명하는 것도 대법원장이다. 사법부의 법관인사권 침해도 아니다. 또한 특별재판부법은 특별재판부의 구성을 통해 사건이나 사건 당사자와 관련이나 연고가 없는 공정한 재판부를 구성하기 위한 것이다. 정치적 편향성이나 유죄의 예단을 갖고 있는 법관을 뽑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법원 재판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수용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특별재판부가 꼭 필요하다. 기존의 사건 배당 방식대로 배당된 재판부에서 만약 무죄가 선고되면 국민들이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국민들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90%가 발부되는 압수수색영장이 사법농단 관련자들에게는 90%가 기각됐던 악몽을 금방 떠올릴 것이다. 설령 무죄판결이 나더라도 공정한 재판을 위해 구성된 특별재판부에서 무죄판결이 나야 국민들도 이를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국민의 법원 불신이 극심하다는 말이다. 결국 법원 불신과 특별재판부법을 자초한 것은 다름 아닌 법원 자신임을 깨달아야 한다. 특별재판부법은 합헌이다. 오히려 재판거래나 법관사찰 의혹으로 법원 스스로가 허물어뜨린 헌법상의 ‘사법권 독립’을 복원하기 위한 ‘헌법복원법’이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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