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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참가 노동자에게 평가상 불이익을 줘 해고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이 법원에서 뒤집혔다. 서울행정법원은 반도체업체 KEC가 “정리해고를 부당노동행위로 본 재심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중노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KEC 측 손을 들어줬다. 노동위원회는 노사 분쟁을 조정·판정하는 준사법적 성격의 행정기관이다. 노동자나 사용자가 지방노동위원회 판정에 이의가 있을 경우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한다. 중노위 판정에도 불복하면 행정소송을 낼 수 있지만 재심 판정이 법원에서 뒤집히는 경우는 드물다. 이번 판결이 이례적인 이유다.

KEC 노조는 2010년 6월부터 1년가량 전임자 처우 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사측은 이후 경영난을 이유로 노조원 75명을 해고했다. 이 과정에서 사측이 파업 참가자를 전원 퇴직시킨다는 내용의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노조는 구제신청을 냈고, 중노위는 부당노동행위로 판정했다. 그러나 법원은 문건이 만들어져 사실상 실행된 점을 인정하면서도 “파업 참가자라는 이유로 특정인을 해고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측이 정리해고를 회피하려 노력한 사정이 보인다”고도 했다.

경북 구미의 반도체업체 KEC가 지난 해 기계에 손가락이 다쳐 산업재해를 신청한 박모씨에게 회사 대표 명의로 발표한 징계공고문. 징계 사유로 ‘안전사고의 1차적 책임’ ‘회사 이미지 상실 초래’ 등이 적혀 있다. (출처 : 경향DB)


KEC가 어떤 회사인가. 파업 복귀 노조원에게 체벌이 포함된 ‘정신순화교육’을 하고, 노조 탄압에 용역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기업이다. 임원과 관리직의 임금 인상을 위해 현장노동자를 해고하려 하기도 했다. 결국 사측 관계자 4명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사실과 증거에 의해 판단하되, 사건의 맥락 또한 놓쳐선 안된다. 이를 간과할 경우 기계적 판결로 흐를 우려가 있다. 재판부는 사건의 맥락, 그리고 노동3권을 보장한 헌법정신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자신할 수 있나.

대법원을 정점으로 한 사법부의 보수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13일 쌍용차 정리해고가 적법하다고 판결함으로써 기업 판단만으로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27일에는 “노종면 전 노조위원장 등 YTN 기자 3명에 대한 해고는 정당하다”며 권력의 언론장악에 면죄부를 줬다. 앞서 지난 8월엔 철도노조 파업 사건에서 ‘예고된 파업은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례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사법부의 역주행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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