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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추운 겨울이다. 수은주는 영하 십수도를 오르내리고, 대지는 꽁꽁 얼어붙었으며, 칼날처럼 예리한 삭풍은 행인들의 속살까지 파고들고 있다. 기쁘고 희망찬 소식보다는 갑갑하고 참담한 소식만 잇따르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더한층 추위를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 혹한 속에서도 생존의 막다른 벼랑 끝에서 눈물겨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우리의 이웃이 있다.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공장 굴뚝 등 까마득히 높은 곳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은 13일 새벽 경기 평택공장 내 70m 높이의 굴뚝 위에 올랐다. 병마와 싸우고 있던 또 한 명의 해고노동자는 이날 세상을 떠났다. 26번째 ‘해고에 의한 사실상의 살인’이었다. 지난달 대법원이 “회사 측의 정리해고는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리자 노동자들이 갈 곳은 지붕조차 없는 폭 1m의 굴뚝 위뿐이었다. 두 사람은 “6년 세월 동안 끊임없이 몸부림쳤지만 이제 더 이상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절규했다.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임정균·강성덕씨는 지난달 12일부터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옆 대형 전광판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이다. 케이블업체 씨앤엠 하청업체 소속인 이들은 하청업체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동료 노조원 107명과 함께 해고통보를 받았다. 또 원사 생산업체 스타케미칼에서 정리해고된 차광호씨는 경북 구미공장 굴뚝에서 16일로 무려 204일째 농성 중이다.

영하 9도 혹한 속…“동료들아, 우리가 보이는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왼쪽)과 김정욱 사무국장이 14일 경기 평택시 쌍용차 공장 내 70m 높이의 굴뚝 위에서 동료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_ 연합뉴스


혹한에 목숨을 걸고 하늘 높이 올라야 하는 이들 해고 노동자는 한국사회에서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쫓겨난 사람들이다. 사용주는 경영상의 문제 등을 걸핏하면 정리해고를 통해 손쉽게 해결하려 하고, 정부와 법원은 사용주에게 더욱 유리한 정책과 판결을 양산하고 있는 사면초가의 절박한 상황에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달리 뭐가 있겠는가. 기업은 정리해고의 사회적 비용이 만만찮은 만큼 이를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의 배후지원자가 아니라 노사의 중재자라는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시민사회도 해고자들이 생업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이들과 적극 연대해야 한다. 배우 김의성씨는 쌍용차 고공농성을 지지하면서 무기한 1인시위에 돌입했다고 한다. 김씨의 용기와 열정이 사회 곳곳에 확산됐으면 좋겠다. 아무쪼록 해고 노동자들이 하루빨리 굴뚝이나 광고탑에서 내려와 가족들의 따뜻한 품에서 언 몸을 녹인 뒤 일터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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