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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변호사 회 인권위 소속 변호사들이 어제 대법원의 쌍용자동차 판결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해고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몬 판결에 유감”이라며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와 존재를 외면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건은 극도의 사회적 갈등과 생명의 존엄성이 걸린 사안”이라며 “해고 노동자들이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한번이라도 고민해 봤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변호사들은 “대법원은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는 마지막 보루”라며 이번 판결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변호사들이 대법원 판결을 노골적으로 비난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서울변회는 2011년 쌍용차 사태에 대한 특별조사를 통해 국가공권력의 인권 침해와 노사합의 불이행을 그 원인으로 꼽은 바 있다. 쌍용차 문제에 관한 한 전문가 집단이다. 하지만 변호사와 법원은 일종의 갑을관계다. 보수 성향의 변호사 단체가 최고법원을 비난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성명에 동참한 변호사들은 일정 부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대법원을 비판한 것은 그만큼 사안이 중하다는 방증이다.

오영중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오른쪽)과 김종우 변호사가 17일 서울 서초지법 기자실에서 최근 대법원이 내린 쌍용차 해고자 판결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쌍용차 판결은 대법원의 현주소를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다. 정치·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은 대법관 13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결론을 내는 게 통례다. 4명으로 구성된 소부(小部) 사건도 재판관 간에 이견이 있으면 전원합의체로 넘어간다. 그러나 쌍용차 사건은 소부에 배당돼 최종 결론이 났다. 재판관 4명 중 누구도 이의가 없었다는 뜻이다. 더구나 주심을 맡은 박보영 대법관이 비(非)서울대·소수자 몫으로 천거된 인물인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이는 대법원의 편향성이 개인적 성향을 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말해준다.

우리는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후 갈수록 심화되는 보수 성향·획일성에 수차례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그 밑바닥엔 엘리트 법관 일색의 순혈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서울대-50대-남성-법관 출신 아니면 대법관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법 테두리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달라는 주문은 기대난망이다. 이는 대법원의 존재 이유와 직결된 문제기도 하다. 국회에서는 지금 대법관의 절반을 비(非)법관으로 채우는 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대법원이 먼저 달라지지 않으면 편향성의 대가를 치를 곳은 다른 누구도 아닌 대법원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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