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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물화처럼 익숙해진 풍경이 있다. 인사청문 대상자들은 각종 도덕성 의혹에 휘말리고, 막상 청문회에서는 해명은커녕 ‘죄송·불찰·송구’를 읊조리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장면이다. 아무리 결격 사유가 등장하더라도 “죄송하다”고 납작 엎드려 인사청문회 순간만을 모면하면 된다는 경험칙의 산물이다. 25일부터 시작된 ‘3·8 개각’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어김없이 이러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26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26일 청문회에서 배우자·자녀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송구하다”고 했다. 문 후보자의 배우자와 두 자녀는 1998년 위장전입했고, 2006년에는 한 달에만 총 3차례 위장전입을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고위공직 후보자들이 위장전입에 줄줄이 걸리자 2017년 말 병역기피·세금탈루·부동산투기·위장전입·논문표절 등 소위 ‘5대 원칙’을 성범죄와 음주운전을 포함한 ‘7대 원칙’으로 확대하면서 위장전입의 문턱을 낮춘 인사검증 기준을 제시했다. 위장전입은 인사청문 제도가 장관급까지 확대된 2005년 7월 이후 자녀 학교 배정 등 목적으로 2회 이상일 경우로 완화했다. 2006년 자녀 학교를 위해 3차례 위장전입을 한 문 후보자는 이 기준에 예외인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딸 증여세 탈루, 업무추진비 소득신고 누락 등과 관련해 뒤늦게 증여세를 납부한 것에 “정식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박 후보자는 청문회 하루 전인 25일 6500만원의 세금을 납부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이날 청문회에서 과거 ‘막말’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 “사과드린다”는 답변을 되뇌었다. 앞서 25일 청문회를 거친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다주택 보유와 꼼수 증여, ‘갭투자’ 등에 대해 실체적 해명 없이 ‘죄송·반성·송구’를 수없이 반복했다. 주택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의 수장으로서 적격성에 의문이 찍히는 부동산 문제들에 대해 소명은커녕 “죄송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후보자를 보는 서민들의 상실감은 너무 크다.

누구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하는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일탈과 편법 행위가 면피성 사과 한마디로 아무 일 아닌 듯 넘어간다면 ‘공정’ ‘정의’ 사회는 헛구호에 그치기 십상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죄송·송구’로 점철되는 청문회를 마냥 지켜봐야 하는 이 열패감을 인사권자가 진지하게 새겨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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