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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사퇴한 한상대 전 검찰총장의 후임자를 인선하기 위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발족했다.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당연직 5명과 비당연직 4명 등 9명의 위원으로 추천위를 구성했다고 한다. 추천위가 3명 이상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법무장관은 추천 내용을 존중해 최종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제청하게 된다. 검찰총장이 추천위의 추천을 받아 임명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퇴임하는 한상대 검찰총장 (경향신문DB)
법조계에서는 차기 검찰총장이 오는 4월쯤 임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다음달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임명되는 신임 법무장관이 추천위를 꾸리고, 이 추천위가 후보군을 압축한 뒤에야 제청 및 인사청문 절차가 시작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러나 예상을 깨고 비밀리에 추천위원들을 위촉했다고 한다. 어제 일부 언론이 위원회 구성 사실을 보도한 뒤에야 법무부는 공식 자료를 배포했다. 지금부터 인선 절차를 진행해도 새 정부 출범까지 시간이 빠듯하다는 게 법무부 논리다. 공허하고 군색하다. 검찰총장은 국무위원이 아닌 만큼 조각 때 반드시 임명할 필요가 없다. 대선도 총장 직무대행 체제로 치른 터에 인선이 한두 달 늦어진다고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이후’를 보장받기 위해 차기 총장 인선에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렇지 않다면 추천위 구성을 이런 식으로 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우리는 차기 검찰총장 인선 절차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본다. 이 대통령 측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측의 교감이 있었다고 하나 이는 중요치 않다. 논의의 핵심은 새로 임명될 검찰총장이 수행할 역할에 있다. 차기 총장은 시대적 과제로 부상한 검찰개혁의 중심에 서게 될 인물이다. 개혁안을 마련하는 일은 국회와 시민사회의 몫이 되겠지만, 일선에서 뼈를 깎는 각오로 개혁을 지휘해야 할 사람은 총장이다. 이처럼 중차대한 역할을 맡게 될 검찰총장을 신·구 권력이 ‘짬짜미’ 식으로 임명하는 일은 용납될 수 없다. 박 당선인은 또한 55명에 이르는 검사장급 이상 직급을 순차적으로 감축하겠다는 공약을 밝힌 바 있다. 이를 포함한 검찰개혁 방안부터 구체화한 뒤 후임 총장을 인선하는 것이 순리다. 더욱이 당연직 추천위원인 법무부 검찰국장을 통해 인선 과정을 주도할 권재진 장관은 대표적 ‘MB맨’이자 민간인 불법사찰의 은폐·조작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차기 총장 인선에 관여할 만한 도덕적 권위나 정당성이 결여된 인물이다.
박 당선인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지명에 이어 또 한 번의 ‘인사 시험대’에 올랐다. 형식적으로 이 대통령 측이 인선 과정을 주도한다 해도 인사의 실질적 내용과 결과에는 박 당선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시대교체를 역설해온 박 당선인이 인사를 통해 전임자에게 안전판을 제공하는 실책을 저지르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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