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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정 문화부 부장



박근혜 당선인이 차기 대통령으로 확정된 이후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현대사를 다룬 책들이 갑자기 많이 팔리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한홍구의 <대한민국사>, 서중석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등의 판매량은 대선 직후 단기간에 열 배, 스무 배씩 가파르게 치솟았다. 책을 구입하는 계층은 주로 2030세대로,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인혁당’이니 ‘정수장학회’ 등의 실체와 역사적 맥락이 궁금했던 게 구매 동기다. 박정희 시대를 직접 경험했던 5060세대와 달리, 이들은 박정희의 유산 위에 세워진 박근혜 정권을 이해하기 위해 한 세대 이전의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경향신문DB)


역사에 대한 해석은 늘 현실정치와 맞물려 있다. 문민정부가 ‘역사 바로 세우기’를 시작한 이래 새로운 역사 인식과 그에 따른 과거 청산은 새 정부의 중요한 전리품이 됐다.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진 진보정권에서 4·19와 5·18이 혁명으로 승격했고 분단과 6·25 전쟁, 군부독재 기간의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졌다. 그러자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이명박 정부는 민주화 세력이 산업화 세력을 폄훼했다고 항변하면서 공약사업인 현대사박물관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란 설익은 상태로 개관했다. 대한민국에 방점이 찍히는 바람에 현대사의 출발점인 상하이임시정부의 법통이 무시되는가 하면 경제발전에서 소외된 세력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에서 현대사 인식문제는 좀 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박근혜 당선인의 후보자격 시비과정에서 현대사에 대한 인식을 묻는 일이 발생하자 박 당선인은 5·16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박정희 통치기간 중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게 사과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했다. 박 당선인의 역사 인식이 중요해진 이유는 그가 통치할 향후 5년이 같은 보수정권이면서도 과거사와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게 출발한 이명박 정권과 달리 박정희 시대의 역사가 멈춘 지점에서 다시 쓰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34년 만에 영애에서 대통령으로 신분이 바뀌어 청와대에 다시 들어가는 박 당선인은 아버지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밖에 없다.


한 세대를 뛰어넘은 역사의 계승은 ‘서민’이나 ‘애국’처럼 사라졌던 단어들이 다시 등장하면서 실감을 더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대선기간 중 재래시장을 누비며 영세 상인의 손을 잡았고, 당선 이후 첫 공식 활동으로 생활보호대상자들의 도시락을 배달했다. 그의 서민 행보에는 세력화하지 않은 이들만 포함될 뿐, 똑같은 소외계층이면서도 체제 위협적인 비정규직이나 해고 노동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독재정권에서 반대파를 숙청하는 명분이던 ‘애국’이 정권에 대한 무조건적 옹호로 작용하는 것은 극우논객인 윤창중 수석대변인이 “애국자의 마음으로 대변인직을 받아들였다”는 말에서 이미 오염된 형태로 재림했다.


박정희의 유산과 함께 돌아온 박근혜 당선인은 어떤 역사를 쓸 것인가. 그에게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주어진 이유는 비단 보수와 진보의 팽팽한 대결에서 승자가 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대결이라는 현대사의 구도에서 전자의 적통을 계승했다. 스스로 문제의 매듭을 푸는 ‘결자해지’가 가능한 위치에 서있다. 그가 분열의 과거를 끌어안고 통합의 미래로 나가기 위해서는 정략적 차원의 화해가 아니라 진심 어린 소통이 필요하다.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영세 상인과 생활보호대상자뿐 아니라 철탑 위의 노동자와도 만나야 한다. 아버지의 정적이었던 호남 출신 정치인이 아니라 현재의 야당과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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