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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오른 시간당 8350원으로 의결했다. 사용자위원은 동결을, 근로자위원은 1만790원을 주장하면서 큰 입장차를 극복하지 못한 채 결국 사용자위원 전원이 불참하는 초유의 사태 속에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이에 사용자 측은 “가뜩이나 어려운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존폐의 기로에 설 것”이라며 반발했다. “다시 심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노동계도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기대해온 저임금노동자에게 실망을 안겼다”고 평가했다. 노동계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물 건너갔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결정됐지만 만만치 않은 후유증이 우려된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세자영업자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되면서 ‘을과 을’, ‘을과 병’의 ‘약자 간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자영업자 등 비임금 근로자는 683만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25%를 차지한다. 자영업자를 포함한 소상공인은 동종업계 근로자보다 열악한 생활을 한다는 통계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상황에 직면했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 결정에 따르지 않는 ‘불이행’도 불사하겠다고 하는가 하면, 사용자와 근로자 간 자율협약을 체결하는 것은 물론 동맹휴업과 가격인상 계획도 세우고 있다.

1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사용자위원들과 민주노총 추천 노동자위원들이 불참한 채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전원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안이한 정부와 정치권에 책임이 있다. 턱없이 낮은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과정에서 특히 영세자영업자들의 충격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하면서 대책 마련에 소홀히 한 것이다. 정부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저소득층의 소득이 오르고 자연히 소비가 늘어 일자리가 증가할 것이라는 낙관론에 안주했다. 그러나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이 오르자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원 감원에 나섰고, 그 결과는 고용쇼크로 나타났다. 정부가 소상공인들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마련한 일자리안정자금도 제 역할을 못했다. 영세자영업자들 입장에서는 과도한 임대료 인상이나 대기업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 등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인건비가 오르는 상황을 맞이한 셈이다. 정부가 근로자들만 보호하고 자신들의 어려움은 외면하고 있다는 소상공인들의 목소리는 여기에서 나온다. 

정쟁에 매달려 수십건의 소상공인 지원 법안이 발의됐지만 소관 상임위에 묶어둔 채 처리를 하지 않은 국회의 책임도 크다. 이 때문에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 기간을 늘리고 영세상인의 권리금을 보호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비롯해 본사 갑질로부터 가맹점을 보호하고, 카드수수료를 내리는 법안들은 먼지만 쌓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을들의 싸움’이 되지 않도록 특별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당장 소상공인들의 최저임금 불이행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처해야 한다. 정부는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와 기초연금 지급한도 상향조정 등 지원책에 더해 소상공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도 결자해지의 자세로 영세상인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들을 서둘러 처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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