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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첫 피고인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건을 심리할 재판부가 결정됐다. 서울중앙지법은 15일 임 전 차장 사건을 ‘적시처리가 필요한 중요 사건’으로 지정하고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 부장판사)에 배당했다. 법원은 “연고관계와 업무량, 진행 중인 사건 등을 고려해 일부 재판부를 배제하고 나머지 재판부를 대상으로 무작위 전산배당했다”고 설명했다. 형사36부는 법원이 임 전 차장 등 사법농단 사건 관련자들의 기소에 대비해 신설한 3개 형사합의 재판부 중 한 곳이다. 사법농단의 진원지인 법원행정처 심의관이나 대법원 재판연구관 경력이 없는 판사들로 구성됐다. 기존 형사합의부 중 사법농단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6개 재판부는 배당 대상에서 미리 배제했다고 한다.

15일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 피해자단체 연대모임 시민들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사법농단 특별법 등을 요구하는 노숙 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법원이 나름의 고육지책을 쓴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셀프 재판부’를 구성했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렵다. ‘누구든 자신의 사건에 관해 판관(判官)이 될 수 없다’는 법언(法諺)을 떠올려보라. 바로 얼마 전까지 법관 인사권을 쥐락펴락하던 전직 고위법관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 임 전 차장보다 더 고위직에 있던 전직 대법관과 대법원장도 같은 법정에 불려올 가능성이 크다. 담당 재판부가 법원행정처·대법원에 근무한 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전폭적 신뢰를 보내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신규 재판부 증설 자체도 법원이 선제적으로 계획했던 조치는 아니다. 국회에서 특별재판부 도입을 추진하자 이를 회피하기 위해 급조한 대안이다. 사법농단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재판의 출발부터 개운치 않은 게 사실이다. 향후 재판부는 심리 과정에서 불편부당한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공정성 시비를 불식해야 할 것이다.

임 전 차장의 재판은 긴 단죄의 시작이다. 다른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기소가 이어질 터이고, 최종 확정판결이 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다. 당연히 사법 신뢰 회복의 책임은 개별 사건 담당 재판부에만 있지 않다. 대법원은 최종심에 이르기까지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조치들을 강구하고 공표해야 한다. 법원 구성원들은 자신의 오류를 덮기보다 직면하고, 제 살을 도려내겠다는 비상한 각오를 해야 한다.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줄줄이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하는 식의 ‘제 식구 감싸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깨달을 때다. “사법부 구성원 스스로 행한 재판독립 침해가 위헌적 행위였음을 국민에게 고백해야 한다”는 대구지법 안동지원 판사들의 호소를 모두가 경청하기 바란다. 사법농단 재판은 역사와 시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정의 실현의 과정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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