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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령부가 22일 공개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북한군인 귀순 사건 당시의 영상은 남북이 무력대치하고 있는 분단현실을 다시금 일깨웠다. 유엔사가 공개한 폐쇄회로(CC)TV를 보면 지난 13일 오후 귀순 병사가 탄 지프차량이 북한구역 도로를 질주해 ‘72시간 다리’와 ‘김일성 친필비’를 거쳐 군사분계선 쪽으로 향하다 멈춰선다. 차량 바퀴가 배수로에 걸린 듯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자 병사는 지프에서 내린 뒤 지척까지 추격해온 북한군인을 피해 남쪽으로 내달렸고, 북한군인 4명이 그를 향해 조준사격을 했다. 이 중 한 명은 병사를 추격하느라 군사분계선을 몇 걸음 넘어섰다가 당황한 몸짓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유엔사는 한국군 경비대대 간부 3명이 부상을 입고 경비구역 건물 벽 아래 쓰러져 있는 병사에게 포복으로 다가가 구출하는 장면이 담긴 열상감시장비 영상도 공개했다.

유엔군 사령부가 지난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북한군 귀순 장면 등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22일 공개했다. 사진 위쪽부터 귀순 북한병사가 차량을 운전해 북측 JSA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 남측 JSA로 달려가고 있는 귀순 북한병사. 북한군 총탄을 맞고 남측 JSA 부근 벽 아래 쓰러져 있는 귀순 북한병사. 우리 군 경비대대 3명이 쓰러져 있는 귀순 북한병사를 이송하는 장면. 유엔군사령부 제공

이번 사건에 대한 한국군의 대응을 두고 자유한국당은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도 우리 군은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다”면서 “대국민 사과와 함께 책임자에 대한 문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대신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 되묻고 싶다. 맞대응 사격으로 판문점을 피로 물들여야 한다는 말인가. 유엔군이 이날 귀순자 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한국군 경비대대 자원들이 엄격한 판단을 통해 현명하게 대응했다”고 결론 내린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군의 정전협정 위반에 대해서는 별도로 엄중하게 책임을 물으면 될 일이다.

공동경비구역을 통한 귀순사례는 그간 몇 차례 있었지만 이번처럼 영상으로 그 전모가 생생하게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선명하지 않은 CCTV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영화를 방불케 하는 긴박감을 느끼게 한다. 평소 뉴스 화면에 비치는 판문점은 남북한 병사들이 굳은 표정의 부동자세로 경계를 펴거나 간혹 상대방의 동향을 카메라로 찍는 ‘정중동’의 풍경이었다. 관광객이나 외국인사들의 방문이 허용될 정도로 ‘긴장 속 평온’이 유지되어온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공개된 영상은 이런 평온함이 언제든 순식간에 깨질 수 있는 정전상태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간신히 사경을 넘긴 했지만 온몸에 총상을 입고 고통 속에 치료를 받고 있는 북한병사의 처지는 분단의 비극성을 웅변한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너머로 총격을 가했고 잠시 군사분계선을 넘은 것에서 보듯 정전협정도 상황에 따라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정전체제를 끝내고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쉽지 않지만 달성해야 할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음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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