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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의 명저 <두 도시 이야기>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된다.

‘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한 영국·프랑스 사회 모습을, 인간 군상의 삶을 함축한 문장이다. 거대한 변혁의 시간을 지나는 사회가 어떤 고민들을 견뎌내야 하는지 ‘감탄’과 함께 직관하게 한다. 변화의 결과는 늘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혁신은 그래서 고통스럽다.

우리 사회도 지금 발아래 지혜와 어둠의 양 갈래 벼랑 위에 서 있다. 시민(市民)이 만들고 요구한 ‘피 흘리지 않은 혁명’의 길 위를 정치의 수레는 덜컹거리며 지나고 있다.

한국 정치에선 두 개의 ‘통합’ 이야기가 굴러간다. 제1·2 야당인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의 소위 ‘보수통합론’, ‘중도통합론’이다. 정당 통합이란 게 철마다 흘러나오는 유행가 같아서 얼마나 혁신의 모습이 될지엔 의문부호가 붙지만 야권은 몸살을 앓고 있다. 정치가 견제와 균형의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라면 야권의 신열은 정치 미래의 중대변수다.

정당의 통합론은 통상 ‘정치적 영향력 확대’나, ‘선거적 필요’라는 두 가지 욕망에서 출발한다. 정치적 영향력 확대는 시쳇말로 ‘쪽수’다. 이를 통해 지지층 몰이를 의도한다. 그래서 ‘이념’을 앞세운다. 선거적 필요성은 정치적 생존이라는 현실적 공학이 뿌리다. 한국당의 바른정당 흡수통합론이 전자라면, 중도통합론은 후자에 가깝다.

‘보수통합’의 미래는 명료하게 ‘암울’하다. 지금의 보수통합론은 10년 ‘보수의 실패’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어떤 성찰도 새로움도 없이 두 정당 사이에서 탈당·복당이 뒤엉키는 ‘쪽수 전쟁’만 난무한다. ‘철새’라고 부르는 것조차 민망하다.

보수는 다시 ‘진영의 감옥’에 갇혔고, 우리 사회는 갈등과 대립의 ‘소돔’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구렸던 보수를 더 구리게 연장할 뿐인 셈이다. 이처럼 한국당발 보수통합은 단 한마디 희망도 보여주지 못하기에 실상 정치의 미래로서는 논외다.

오히려 관심은 ‘중도통합’이지만, 그 앞날은 암울할 정도로 ‘불명료’하다. 한국 정치의 고질인 양극화 정치 극복과 다당제 문화 정착 의미에도 말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중도통합의 진위(眞僞)가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그동안 진영으로 갈라졌던 양측 일각의 통합이 중도통합이냐는 것과 그 주체를 ‘정치적 합리주의자’로 주장한 게 논쟁점이다. 합리주의를 자처하는 것은 그외 것은 모두 극단화하는 주장이 된다. 중도와 통합을 이야기하면서 나머지를 배제하는 모순이 생긴다.

실상 당내 ‘호남축’을 밀어내면서까지 밀어붙이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중도통합에선 가치보단 ‘권력 욕망’이 읽힌다. 김대중 정부의 이회창, 이명박 정부의 박근혜를 꿈꾼다는 의미다. 균형으로서 견제 세력이 아닌 ‘견제 권력자’를 열망하는 것이다. 안 대표가 중도통합의 미래를 가치와 비전 대신 “집권당” 구호로 설명하는 것이 그 증좌다. 초라한 쪽수에도 ‘새 보수’ 가치 중심의 ‘신보수통합’을 외치는 바른정당의 호기가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대안 없는 무망한 보수의 참담한 현재가 안 대표로 하여금 욕심내게 만든 상상일 게다.

중도통합은 안 대표의 ‘새 정치’와 유승민 대표가 담지한 ‘새 보수’의 접합점에 대한 논의와 설득이 우선일 것이다. 공통분모를 모색하고, 그 경계를 넓혀가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안 대표는 이 공통기반을 만들고, 비전으로 키워 분열 위기에 처한 당을 설득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다. 그 점에선 차라리 지금은 연대가 더 맞다.

내부조차 설득 못하는 통합은 위선이다. 비전 없는 중도통합은 그저 눈치보는 ‘쪽수’들 긁어모으기에 머물 것이고, 이는 정치적 기회주의가 될 뿐이다. 지금 두 당의 통합론은 ‘안·유’의 일시적인 ‘전략적 동업’ 이상 의미를 같기 어렵다. 이처럼 지금 중도통합론은 실패의 운명에 가깝고, 그 실패는 우리 정치에서 다른 ‘가능성의 실패’가 될 것이다.

보수정치가 과거 영광을 재현하고 싶다면 <진보집권플랜>을 탐독하는 정도의 기술부리기로는 턱도 없다. 중도정치가 정치사에 유례없는 세력으로 서려한다면 ‘밀어내기식 통합’으론 불가능하다. 어느 것이든 ‘패러다임 시프트’ 정도의 창조가 필요하다. 권력을 탐욕하기보다는 ‘정치의 위기는 곧 공동체의 위기’(‘대한민국 미래전략보고서 2017’)라는 공공성의 자각이 절실하다. 그때서야 통합은 정치의 미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광호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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