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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사법농단 사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다.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에서 피의자로 조사받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서울중앙지검에 나가기 직전 인근 대법원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검찰청사 앞에 설치될 포토라인에선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대법원장 재직 중의 범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가 기소 후 재판을 맡게 될 법원을 들러리로 세워 ‘시위성 퍼포먼스’를 벌이겠다니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전직 대통령들도 청와대 앞이 아닌 검찰 포토라인에서 소회를 밝혀왔는데, 이 무슨 망발인가.

양승태 전대법원장이 11일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해 조사를 받기 이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본인이 최근까지 오래 근무했던 대법원에서 입장을 밝히는 게 좋겠다”는 이유를 댄 모양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짐작 못하겠는가. 사법부를 대표하는 대법원 건물을 등에 지고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검찰을 겁박하고, 사법농단 수사에 반대해온 법원 내 적폐세력을 결집하려는 의도임이 명백하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당초 대법원 경내에서 기자회견을 하려 했으나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정문 앞에서 강행키로 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법원노조)는 “사법농단 몸통 양승태의 오만이 극치에 달했다”며 원천봉쇄를 예고했다. 사법농단에 분노한 일반 시민까지 현장에 몰릴 경우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을 해치고 헌정을 문란케 한 중대 범죄의 피의자다. 검찰 조사를 앞둔 그가 대법원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여론전을 펴는 일은 또 다른 사법농단에 다름 아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제라도 기자회견을 포기해야 마땅하다. 회견을 강행해 불상사가 빚어진다면 온전히 그의 책임으로 돌아갈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3월 이명박 전 대통령 출석 때와 같은 안전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또한 과잉의전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헌법 11조는 ‘법 앞의 평등’을 명시하고 있다.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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