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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계주 금메달리스트 심석희 선수(22)가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38)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당했다고 폭로했다. 성폭행은 심 선수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평창 올림픽 개최 직전까지 4년간 계속됐다고 한다. 심지어 한국체육대학교와 국가대표선수촌 빙상장 라커룸 등 국가체육시설에서도 버젓이 자행했다고 한다.

그렇잖아도 조 전 코치는 심 선수 등을 주먹과 아이스하키채 등으로 상습 폭행한 혐의로 지난해 9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인물이다. 그가 체육 지도자라는 지위를 이용, 폭력을 일삼고 성폭행까지 자행했다니 참담하다. 조 전 코치는 성폭행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심 선수가 강간·상해 등의 혐의로 그를 고소한 터라 수사와 재판을 통해 진실은 곧 드러날 것이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왼쪽)이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 혐의 관련 대책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심 선수는 성폭행 피해사실을 끝까지 숨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여성으로서 견뎌야 할 고통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가족들이 입을 상처 때문에 최근까지도 혼자서 감내해 왔다는 것이다. 심 선수는 지난달 17일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계속되는 폭행으로)‘이러다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그는 그러나 성폭행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피해가 너무 크고, 앞으로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성폭행 피해사실을 밝히기로 용기를 냈다고 한다. 그의 용기 있는 고백에 박수를 보낸다.  

여자쇼트트랙의 세계적 스타가 이렇다면, 일반 선수들이 당하는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대한체육회에 접수된 폭력·성폭력 피해 신고·상담건수는 지난 한 해 동안 348건에 달했다. 이 중 성폭력 신고·상담건수는 93건이다. 대한체육회는 그러나 수사 의뢰나 고발은 단 1건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8일에는 ‘2018년 스포츠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스포츠계 성폭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뒤늦게 “민간주도 특별조사를 진행하고 예방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사후약방문식 처방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심석희 성폭행 의혹 사건’이 아닌 ‘조재범 성폭행 의혹 사건’으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성범죄 피해자가 입을 수 있는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가해자의 이름으로 사건 프레임을 짜는 것은 그 자체가 사회정의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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