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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이 그제 타결한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 대해 국내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미국이 그동안 고수해왔던 ‘농축·재처리 포기’라는 골드스탠더드 조항을 포함하지 않고 제한적으로나마 우라늄 저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의 길을 열어준 내용을 평가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칠레를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의 3대 중점 추진 분야인 사용후핵연료의 효율적 관리,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 원전 수출 증진 등을 중심으로 실질 국익이 최대한 반영됐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원전 기술을 절대적으로 미국에 의존했던 1974년 체결한 기존 한·미 원자력협정이 세계 5위의 원전 강국으로 성장한 지금의 한국 원전 산업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는 지적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새 한·미 원자력협정을 불평등 협정 개선과 에너지 주권 확보 차원에서 본다면 나름대로 이해할 만한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국내 원자력 산업과 정책에 있다. 새 한·미 원자력협정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중요한 요소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박노벽 외교부 원자력 협력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22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원자력협정에 가서명을 하고 있다. 한미원자력협정은 4년 6개월여간의 협상 끝에 22일 타결됐다. (출처 : 경향DB)


농축과 재처리는 핵무장을 한다는 의심과 위험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안이다. 특히 한·미 양국이 공동연구 중이라는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핵연료 건식 재처리)은 세계적으로 실패한 기술로 평가되는 고속증식로를 전제한 것이다. 고속로는 천문학적 비용과 소듐의 폭발 위험성 때문에 프랑스나 일본 등에서도 상용화하지 못하고 있는 기술이다. 따라서 고속로 없는 파이로프로세싱은 고비용으로 핵폐기물을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매우 중대하고 어려운 문제다. 신중하게 다뤄져야 하고 민주적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게 필요하다. 정부도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해 나름대로 공론화를 시도해왔다. 하지만 의견 수렴 과정이 형식적이고 성과도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빌미로 정부가 섣부르게 사용후핵연료 정책을 재처리 쪽으로 밀어붙이려 해서는 안된다. 정부의 원자력 확대 및 수출 정책도 문제가 있다. 한반도 평화와 미래세대 안전을 위한 감핵·탈핵과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번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원전 확대 및 수출 정책을 기정사실화하는 구실로 삼아서는 안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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