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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는 ‘또래’와 ‘오래’를 만나러 간다. 두 달 만의 상봉이다. ‘또래’와 ‘오래’는 짐작되다시피 닭이다. 그런데 그냥 ‘치킨’이 아니라 도시 한복판 아파트 거실에서 알을 깨고 나와 몇 달간 동거한 녀석들이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자고 타령하던 아이가 어느날 친구에게서 부화기를 빌려왔다. 친구는 “유정란으로 산란한 지 20일 지나지 않은 것이면 된다”고 일러줬다.
‘설마 병아리가 나오겠어….’ 반려견과 반려묘 대신 병아리를 키우겠다고 하니 들어주는 척이라도 할 생각으로 부화에 동의했다. 부화기에는 ‘21일 후 부화’라고 쓰여있었지만 유정란을 생명이 아닌 프라이나 삶은 달걀 거리로만 여겼다.
일단 이름은 지었다. 만식이, 영자, 찰리 등을 거론하다가 장난처럼 “또래와 오래가 어떠냐”는 얘기가 나왔다. 서로 잔인하다고 했지만 귀엽고 이만 한 이름도 없는 것 같았다. 그 후 부화기 옆에서 치킨을 시켜먹다가 양심에 찔려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꼭 닫고 닭다리를 뜯는 기묘한 가족이 됐다.
정말 부화가 될까. 지난해 11월 중순 21일째 되던 날 아침, 달걀 두 개가 심하게 흔들리더니 껍질에 ‘톡’하고 금이 갔다. 삐악대는 소리도 났다. 그 후 6시간 만에 껍질을 깨고 또래가 나왔다. 그러나 오래는 자정이 다 되도록 나오지 못했다.
사람으로 치면 제왕절개 시술이 필요했다. 핀셋과 가위로 껍질의 얇은 막에 붙어있는 병아리 살점이 다치지 않도록 신경 쓰며 1~2시간에 걸쳐 껍질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병아리는 움직이지 않았고 피에 젖어있어 가망없어 보였다. 다음날 아침 묻어주기로 하고 부화기 뚜껑을 덮었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 오래가 앙증맞게 서 있는 것 아닌가. 식구들은 “생명이 신비롭다”며 병아리들을 귀히 여겼다. 몇 주가 지나자 노란 털이 빠지고 또래는 갈색, 오래는 흰색으로 바뀌었다. 거실에서 산책시키며 품에 안기도 했다. 그러나 서서히 중닭이 되면서 식구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또래와 오래를 점점 애물단지처럼 여기게 됐다. 집에 들어서면 털이 날리고 닭똥 냄새가 진동했다. 매일 톱밥을 갈아주고 사료와 물을 챙기는 것이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결국 추운 베란다로 옮겼다. 또래와 오래는 한시라도 빨리 처분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벼슬이 생기고 시도 때도 없이 상자에서 튀어나오는 통에 공포심마저 생겼다. 상자 위에 붙여놓은 ‘반려닭’이란 푯말이 무색해졌다. 마치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점점 불편한 존재로 여기게 됐다.
해를 넘기고 2월이 되면서 잡아먹지 않고 키워줄 곳을 찾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관상용 닭을 관리하는 농장에서는 입주비 10만원과 매달 3만원의 관리비를 내라고 했다. 매달 3만원씩? 닭의 수명은 15년가량이다. 적지 않은 비용을 치르며 ‘반려닭’으로 계속 돌봐야 하는 것일까. 갈등이 시작됐다.
개와 고양이, 새 등이 ‘반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32년 전이다.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을 주제로 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반려로 개칭하자는 제안이 나왔다고 한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사회에서 인간 본연의 성정을 되찾게 하고 위안을 주는 등 인생 동무로서의 지위를 인정하자는 뜻에서다.
‘반려닭’이라고 쉽게 이름 붙여놓고서는 어쩌지 못해 쩔쩔매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반려(伴侶)’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됐다. 한자가 다르긴 하지만 반려(反戾)에는 ‘배반하여 돌아섬’이라는 뜻도 있다. 귀여운 병아리에서 공포스러운 닭으로 변한 것은 정작 또래와 오래가 아니라 내 마음이 아니었는지. 이런 마음이 어찌 동물에게만 해당될까. 또래와 오래는 마음 좋은 농장주인을 만나 현재 경기도 광주의 한 버섯농장에서 잘 자라고 있다.
김희연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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