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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저녁 대선후보 3차 TV토론회는 2시간 내내 상대 흠집 잡기로 얼룩진 실망스러운 토론이었다. 앞서 두 차례 토론에서 보여준 후보들 간의 진흙탕 공방은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됐다. 이날 토론회 주제는 외교안보와 정치개혁이었다. 하지만 정책토론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특정 후보의 대학시절 성폭행 공모 의혹, 부인·아들 특혜 채용 의혹,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쪽지 등 본질과는 아무 상관없는 말싸움만 계속됐다. 미래는 없고 오로지 과거지사만 놓고 충돌했을 뿐이다. 추궁당한 한 후보는 “나는 해명 다 했으니 당신이나 열심히 해명하시라”고 했고, 다른 후보는 “그만 좀 괴롭히라”고 비명을 질렀다. 상대 후보를 인정할 수 없으니 얼굴을 보고 말하지 않겠다면서 토론 내내 쳐다보지 않기도 했다. 지금 한반도 주변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요동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다 모여 외교안보 대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름은 한 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오죽하면 5명 후보들 스스로 토론회를 마친 뒤 “수준 이하의 토론이었다”고 혀를 찼을까.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주최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왼쪽부터),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토론 시작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에 따라 치러지는 비상(非常)선거다. 그만큼 선거 기간이 짧고, 과거에 비해 제대로 된 검증은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TV토론은 후보들의 지도자 자질과 능력을 알리고 측정할 거의 유일한 장(場)이라고 할 수 있다. 3차 토론회 시청률이 1차(11.2%), 2차(26.4%) 때를 훨씬 넘어 38.5%를 기록한 것은 유권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는 증거다. 토론회를 본 시민들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상대 공약을 숙지하지 않고 간단한 팩트 체크도 안 하고 같은 질문만 반복” “토론회가 아닌 난장판” “정말 저 사람들 중에서 대통령을 뽑아야 하나. 한숨만 나온다”는 반응을 보였다. 

5·9 대선은 이제 꼭 2주일 남았다. TV토론은 투표일까지 불과 3차례(28일·5월2일 중앙선관위 2회, 25일 JTBC 1회)밖에 남아있지 않다. 더 이상 상대를 헐뜯고 말꼬리 잡으며 흠집 내는 데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 철 지난 색깔론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경쟁자를 깎아내린다고 자신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유권자 앞에서 벌이는 토론은 국가를 경영할 책임있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희망의 경연장이 되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토론 방식을 개선하고 보완해야 한다. 무엇보다 후보 간 정책 변별력을 높여야 한다. 전문가들이 정책을 질문하고 후보가 답하는 토론이 좋겠다는 의견은 경청할 만하다. 그렇지 않고 알맹이도 품격도 없이 유권자 부아만 돋우는 이런 식의 토론을 계속할 거라면 차라리 접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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