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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안보논리는 단골이다. 국가보안법, 보안관찰법이나 테러방지법도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 유지와 북한과 대치하는 현실적 상황이라는 안보논리로 폐지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거나 새로 제정된 법률들이다. 국가정보원의 국내정보 수집권한과 수사권을 폐지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보수진영은 분단 상황을 들먹이며 반대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안보가 화두다. 남북대치 상황에 적절한 긴장감을 가미시켜 안보불안 세력을 표로 연결해 보려는 시도가 현직 대통령이 탄핵된 뒤 치러지는 2017년 대선에서도 등장했다. 정당이나 후보의 정체성과 관계없이 표만 된다면 안보를 걱정하는 표를 끌어안으려는 기회주의적 변신도 서슴지 않는다. 보수언론은 안보 이슈가 이번 대선의 유권자 선택기준인 것처럼 부풀리고 호도한다. 상대방 후보에 대한 시대착오적 안보 공세도 불사한다. 어김없이 안보좌판이 펼쳐지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이들도 제법 많다. 해묵은 주적논쟁과 북한인권결의안 표결과정이 다시 도마에 올라와 있다. 사드 배치와 햇볕정책도 공격거리다. 북한 이슈가 표심을 가를 것이라는 전망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4월전쟁설의 근거였던 미국 항공모함은 한반도 근처 어디에도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여전히 한반도 위기설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부추겨 득을 보려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신북풍이 불기를 기대하면서 대선을 안보와 종북프레임으로 몰고 가려는 열세 후보들의 안간힘이 애처로워 보인다.

북한은 우리에게 누구인가. 주적인가, 심각한 위협이 되는 적인가. 적국인가, 반국가단체인가. 대화하고 협력하는 국가인가.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정부와 국가로서 인정한 것인가. 독립국가만 가입할 수 있는 유엔에 남북한이 동시에 가입되어 있으므로 독립국가로 승인받은 것인가.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과 제4조의 평화통일조약을 근거로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고권을 침해한 반국가단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가보안법도 그렇고 대법원 판례와 헌법재판소 결정도 반국가단체성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화해와 협력기조에 따라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적 관계로 보고 있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이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북한은 교류의 대상이다. 이처럼 북한은 반국가단체이자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이며 교류의 대상이다. 국방백서에는 북한이 아니라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모순된 상황의 공존은 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단언할 수 없는 어려움을 준다. 군사적 위협과 우리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수행주체여서 적이라고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위하여 북한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통수권자이기도 하지만 행정부의 수반이기도 하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헌법에 입각하여 평화통일을 위해 성실히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에 적극 나서서 남북 간 대결과 분단구조를 해체하는 대북정책을 펼쳐야 한다. 북한을 적으로 보는 시각이 아니라 평화와 통일의 패러다임으로 무장한 대통령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러니 철지난 안보 공세는 이제 멈춰야 한다. 북한이 주적이냐는 물음에 단답을 강요하는 것으로 안보관을 검증할 수는 없다. 이번 대선은 후보의 공약을 알리고 파헤치고 고르는 선거여야 한다. 그것은 후보자의 도덕성뿐만 아니라 정책과 능력 중심이어야 한다. 지금은 안보관 검증공세로 부정부패 척결,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복지확대와 양극화 해소 등 다른 중요한 정책검증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냉전시대의 사고로 주적논쟁을 벌이는 세력은 안보논리로 유권자를 유혹하지만, 안보프레임과 색깔론은 유권자의 눈과 귀를 가리고 막아 표심을 왜곡시킬 수 있다. 언론매체에 정책검증 꼭지가 기획시리즈로 등장하지만 지금까지 네거티브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그 영향력은 떨어진다. 네거티브와 안보 이슈는 블랙홀과 같아서 정책선거를 실종시킨다. 몇 번 남은 TV토론에서도 여전히 그럴 것이다. 난상토론이지만 생산성은 없다. 그러면 유권자에게 피로감만 주는 대선후보 토론회가 된다. 상대후보에 대한 공세는 후보 간 토론방식의 한계다. 후보가 제시한 공약과 관련 있는 이익집단이나 시민단체, 학계와 후보 간의 토론으로 검증다운 검증이 진행되어야 유권자의 의견도 반영되고 후보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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