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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봄과 함께 4·3 그날이 왔다. 하지만 제주에는 아직 봄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당시 국가폭력에 희생된 이들은 71년이 지난 지금도 영면할 수 없다. 정치권이 이들의 ‘해원(解寃)’을 외면하면서 4·3특별법 개정작업이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4·3 70주년 희생자 추념식에서 “유족들과 생존 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정부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고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4·3특별법 개정작업은 지난 1년을 허송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개정안 발의 16개월 만인 지난 1일에야 법안심사소위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군사재판 무효화가 법적 안전성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 1조8000억원으로 예상되는 배·보상액 규모 등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사법부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온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제주지법이 지난 1월17일 4·3수형인 18명이 청구한 ‘불법 군사재판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내린 것이다. 법원이 당시 군사재판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생존 수형인들에게 ‘사실상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제주 4·3 71주기를 하루 앞둔 2일 제주 4·3 당시 함께 수감됐던 송순희 할머니(오른쪽)와 변연옥 할머니가 생존 수형인 자격으로 처음 제주도를 방문해 제주도의회 의장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4·3사건 당시 송 할머니와 변 할머니는 같은 버스를 타고 전주형무소로 이동해 각각 안동형무소와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됐다. 두 할머니는 출소 후 인천과 안양에서 살다 이날 70년 만에 다시 만났다. 제주 _ 권도현 기자

소송 대리인 임재성 변호사는 2일 라디오에 출연해 당시 군사재판이 판결문이 없는 것은 물론 수형자들이 법정에서 선고형량을 듣지 못하고 감옥에 가서야 몇년형을 받았는지 처음 알았을 정도로 불법적이었다고 했다. 법원의 판결은 특별법 개정안의 주요 쟁점인 군사재판 무효화에 대한 법적 근거를 부여한 의미가 있다.

4·3은 해방 직후 불안정한 정치상황에서 벌어진 한국 현대사의 최대비극이다. 2003년 정부의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2만5000~3만명의 제주도민이 희생됐고, 이 중 3분의 1은 어린이와 여성, 노인 희생자였다. 유족과 직간접적 피해자들의 고통도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추념식에서 “제주에 봄이 오고 있다”고 했지만 이날 제주에서 열린 특별법 개정 촉구집회에서 참석자들은 “개정법안이 처리되지 않는 한 제주의 봄은 요원하다”고 했다. 

4·3 수형인 2500여명 중 생존자는 30여명에 불과하고, 현재 80~90대인 이들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4·3의 치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개정은 시간을 다투는 문제다. 정치권이 이를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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