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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자신에게 ‘김학의 성범죄 사건’ 개입 의혹을 제기한 이들을 “악한 세력”(페이스북, 3월20일)이라고 규정했다. 기독교 언어를 정치에 끌어들인 것이다. 그러면서 황 대표 자신은 의혹을 받는 사람에서 ‘판결자’로 변신했으니 참으로 편리한 방식이다. 문제는 악한 세력은 굴복이나 타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정치의 미덕인 타협은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된다.

기독교(개신교) 언어를 교회 안에서 사용하는 것이야 문제 삼기 어렵다. 하지만 교회 담장을 넘는다면 달라진다. ‘교회 세습에 반대하는 마귀’ 발언(대형교회 ㄱ목사)처럼 언론과 시민사회를 비난한다면 사회 현안이 된다. 황 대표와 ㄱ목사의 발언은 스스로가 봉착한 세속적 문제를 기독교를 동원해 풀려고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황 대표와 자유한국당은 동의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음 대화는 어떤가. “황 대표가 나중에 청와대에 들어가더라도 교계 지도를 잘 받아야 한다”(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 “천만 크리스천들과 함께 뜻을 좀 모아달라”(황 대표). 기독교 일각에서 정치에 뛰어들려 하고 있고, 황 대표는 그 선봉을 자처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은 정치와 종교가 결합하게 될 때 정치적 상대나 정적을 넘어 상대는 악의 차원으로 격하되어 악의 화신이 되고 자신은 선의 차원으로 승화된다고 말했다. 의혹을 합리적으로 해명하지 않고 악이라고 맞받아치는 황 대표의 모습에서 그 같은 종교적 독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국가 지도자의 종교적 독선은 독재보다 무서울 수 있다.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 대통령 조지 부시는 ‘악의 축’ 구호를 앞세워 이라크를 침공하며 ‘성전’이라고 정당화했다. 그러나 부시가 침공 명분으로 내세운 대량살상무기의 보유는 허구로 드러났다. 황 대표 발언이 내포하는 위험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와 창원성산 보궐선거에 출마한 강기윤 후보가 지난 30일 경남FC와 대구FC의 2019 하나원큐 K리그1 4라운드 경기가 열린 창원축구센터 안에 들어와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연합뉴스]

황 대표는 ‘비종교적’ 정치 행보에서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엔 정치 행위가 일절 금지된 프로축구 경기장에 들어가 선거 유세를 하기도 했다. 어족자원보호선을 넘어가면 만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나. 그렇게 하면 물고기 씨가 마르고 어장이 황폐화될 터이니 출입금지 규정을 만들어 지키는 것이다. 황 대표는 ‘서울역 플랫폼 관용차 진입’ 논란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황 대표의 ‘상습적 반칙’의 배경에 기독교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내 뒤에 천만 기독교 세력이 있는데 그깟 법·규정 위반이 대수로운가’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모 정치평론가는 보수 특유의 ‘대한민국 오너’ 심리의 분출로 봤다. 황 대표가 ‘이 나라가 본디 보수 것인데’라고 인식한다면 특권의식과 갑질의 동기가 설명이 된다. 어느 쪽이든 시민의 입장에서 용납할 수 없다.

바라건대 황 대표가 항간의 우려를 씻고 정치에 종교를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정치 문제를 정치 안에서 정치적으로 풀었으면 한다. 또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에 앞서 중요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것은 진짜 악한 세력이 누구인가이다. 본인 말처럼 “제가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의혹 사건에 개입했다고 왜곡했다고, 허위 사실을 기획하고 조작하고 모략하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국민이 부여한 행정 권력과 금력을 내세워 무고한 여성들을 강제로 짓밟은 세력, 그런 끔찍한 짓을 한 것을 알고도 고위 공직에 기용한 세력, 그것을 묵인·방조한 세력인가. 

도움이 필요한가. “검찰에서는 진실을 얘기해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동영상) 행동이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한번 해보시라’고 시키기도 했다.”(김학의 성범죄 사건 피해 여성, KBS) 이런 피해여성이 30명이나 된다. 가해자들은 성폭력을 저지르고 동영상을 찍어 가족까지 협박했다. 피해자들은 10년 넘게 진실을 가려달라고 직접 얼굴까지 공개하며 호소했지만 돌아온 것은 무혐의 처분이었다. 경찰이 “동영상 인물은 확인할 것도 없이 김 전 차관이 맞다”고 했지만 검찰은 “불분명하다”며 부인했다. 김학의 사건은 흔한 사건이 아니다. 박근혜 청와대와 검찰, 경찰에 뿌리박은 거대한 악한 세력이 권력에 취해 악을 악으로 인식 못한 유례를 찾기 힘든 반인권, 반여성, 반국가 범죄다. 

우리는 세금을 낸 시민으로서 황 대표가 당시 법무장관으로서 어떻게 처신했는지 알 권리가 있다. 지금도 황 대표는 매년 수백억원의 세금을 지원받는 제1야당 대표로서 진실을 알리고 사회 정의를 세워야 할 의무가 있다. 간음금지는 기독교의 계율(십계명 중 칠계명, 출애굽기)이기도 하다. 현실 정치로든 종교적으로든 황 대표는 답해야 한다. 누가 악한 세력인가.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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