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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를 동원해 광주시민들에게 여러 차례 사격을 가한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가 7일 발표했다. 특조위에 따르면 당시 계엄사령부는 1980년 5월21일부터 전남도청에 진입한 27일까지 수시로 문서 또는 구두로 헬기 사격을 지시했다. 일례로 5월22일 전투병과교육사령부에 시달된 ‘헬기작전계획 실시지침’은 “상공을 비행정찰해 버스나 차량 등으로 이동하면서 습격, 방화, 사격하는 집단은 지상부대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사격 제압하라”고 적시하고 있다. 공군의 수원·사천 전투비행단 전투기들은 폭탄을 장착한 채 출격 대기 중이었다. 해군과 해병대까지 출동 대기시켜 육·해·공군 3군이 모두 광주를 향해 출동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도 새로 드러났다. 신군부의 주도면밀한 광주 진압 계획과 잔혹성에 새삼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군이 헬기 사격을 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비인도적 행위다. 이는 신군부가 광주시민을 시민이 아니라 적군으로 간주해 무차별 사살하려 했다는 증거이다. 특히 5월21일 헬기 사격은 비무장 상태인 시민들을 공격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지상에서 시민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가해진 사격보다 훨씬 공세적이다. 계엄군의 범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했다는 군의 주장은 핑계일 뿐이다. 5·18 때 공수부대와 육군뿐 아니라 해·공군, 해병대까지 동원한 사실은 새로운 시사점을 던진다. 당시 공군과 해군 지휘부의 신군부와의 거래 및 그들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이번 조사에도 불구하고 규명해야 할 부분이 더 있다. 당장 광주에 투입된 헬기 조종사 5명은 무장출동은 시인하면서도 사격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암매장 희생자 찾기도 한창 진행 중이다. 최종 발포명령자도 밝혀지지 않았다. 가해자들과 일부 추종세력은 광주시민을 폭도라고 칭하는가 하면 북한군이 개입했다며 5·18을 폄훼·왜곡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는 5·18에 크게 빚을 지고 있다. 광주시민들은 부당한 권력에 항거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라는 것을 피로써 가르쳤다. 이런 현대사의 비극이 40년 가까이 되도록 그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것은 말이 안된다. 이번 조사는 5·18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한층 강조한다. 5개월간에 걸친 특조위의 조사를 이어받아 진상을 규명할 법적 근거와 조직이 필요하다. 정치권은 이미 발의돼 있는 5·18특별법안을 신속하게 통과시켜야 한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5·18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느낀다면 법 통과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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