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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지방선거를 관찰하러 온 외국인 정치학자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주요 선거 이슈는 무엇인가?” 세종시, 4대강, 반정부 선거연합 등을 열거했다. 논리적으로는 사회 전체를 찬성과 반대로 양분하는 ‘최대 동원의 정치’를 불러올 만한 이슈들이다. 격렬한 갈등이 이어지고 그에 따라 선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투표 참여 의지 역시 고조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그래서 투표율이 얼마나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
서울 마포구의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경향신문DB
평등한 투표의 권리가 정치공동체 전체의 정당한 결정으로 이어지는 것이야말로 ‘선거의 민주성’을 말할 수 있는 최소조건이라고 할 때, 일정 정도 이상의 투표율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50년 동안 “서유럽 민주주의의 안정성”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기 동안 서유럽 국가들이 평균적으로 80% 가까운 투표율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떨까? 민주화 이후 최초 선거였던 1987년 대선과 88년 총선에서 한국의 투표율은 각각 89.2%와 75.8%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는 63%와 46.1%로 떨어졌다. 정확히 20년 만에 26.2%와 29.7%의 유권자가 투표시장을 떠났고, 비율로 보면 각각 29.4%와 39.2%가 감소했다.
투표율 20년새 급격한 하락
내가 아는 한 이보다 빨리 투표율이 떨어진 나라의 사례는 없다. 전쟁이나 혁명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됐다. 20세기 초 미국처럼 유권자 자신이 나서 등록해야만 하는 제도를 도입해 하층의 투표를 어렵게 한 것도 아닌데도 그랬다. 어찌됐든 한국 정치에서 명실상부한 제1당은 무당파가 되었다. 누가, 왜 투표하지 않을까?
정당이론의 패러다임 하나를 개척한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상당수의 투표 불참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체제에서 해소되지 않은 역사적 긴장의 본질에 대해 통찰력을 갖게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투표 불참자의 수는 결국 그들이 “기대하는 대안이 억압된 크기”를 말해준다고 보았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선거란, 경쟁하는 정치조직 가운데 하나를 보통의 시민이 선택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유권자에게 표를 요구하는 정치세력들이 먼저 우리 사회가 해소해야 할 “역사적 긴장들” - 남북관계와 평화체제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압축적 경제성장의 부정적 효과를 개선하는 문제일 수도 있고, 급격히 심화되어 온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 에 대해 선택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을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대다수 보통의 시민 유권자들에게 정치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 없이, 또 그런 기준에서 볼 때 우리 정치가 결핍한 것들에 대한 비판적 반성 없이, 나아가 왜 다수 유권자들이 현재의 정당들을 선택의 대안으로 느끼지 못하는지 하는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함 없이, 투표를 해야 할 유권자의 의무를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큰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을 홍보대사로 위촉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으로는 지금과 같은 나쁜 상황을 변화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정치 힘은 ‘목소리’ 주는 것
지난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사명을 “목소리 없는 사람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치에서 목소리를 갖지 못했던 하층의 유색인종들이 투표를 통해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는 이번 의료보험 개혁안을 통해 목소리를 갖지 못했던 무보험자 3200만명에게 목소리를 줄 가능성을 열었다.
민주정치가 갖는 민중적 힘은 적어도 미국 정치에서 그런 식으로 표출되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누가 목소리 없는 다수 유권자들에게 목소리를 갖게 할 수 있을까? 이번 선거도 그렇고 아마도 한동안 한국 정치의 중심 문제는 바로 이 질문이 될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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