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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의 필요 때문에 정치가 만들어졌지만, 그러나 정치를 이해하는 인간의 능력에는 불가피한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또 정치 현실을 경험할수록 더욱 그렇게 된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지켜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수많은 여론조사의 예측을 크게 벗어난 개표방송 앞에서 필자는, 수천만의 유권자가 분출해낸 정치적 열망을 경이롭게 바라볼 따름이었다. 당황하는 한나라당의 모습이든 환호하는 민주당의 반응이든 ‘북풍’이 어떻고 ‘노풍’이 있었다 없었다 하는 해설들 모두 지극히 사소한 일로 보였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결과의 불확정성을 최대의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정치제도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실감하게 된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6·2 지방선거 전국 228개 기초단체 시장·군수·구청장 당선자, 광역의원 정당별 당선자 수, 기초의원 시·도별 정당 당선자 수
진보의 가치를 정치의 방법으로 실천해보고자 했던 이른바 진보정당들의입장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가 흔쾌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선호의 표출을 어렵게 하는 불합리한 선거제도, 이번엔 ‘반MB’ ‘민주대연합’으로 표현되었지만 매번 작은 정당들에 희생을 요구하는 보수양당제의 부정적 효과 등 이들로서는 항변하고 싶은 억울함이 클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진보정당 후보들이 사퇴해주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 역시 이들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연합과 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해도 그것이 소수파의 권리를 억압하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배려하는 자세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획일주의를 교정하는 데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닌가 한다.
진보정당 희생 요구 선거제도
물론 한국 정치의 이 모든 불합리에 억울함을 느낀다 해도 결국 문제의 해결자는 진보정당 스스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선거의 경험을 정치적으로 더 지혜로워지는 학습의 기회로 삼는 과제 역시 그럴 것이다. 따라서 심상정 후보의 사퇴를 둘러싸고 진보정당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이 정치적 냉소주의로 귀결될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전기로 작용할지는 주목할 만한 일로 여겨진다.
필자는 진보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에는 아주 ‘좁은 길’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길을 개척해가는 일에 성과가 있으려면 정치의 논리를 이해하고 그것에 창조적으로 적응해야 한다고 본다.
진보의 가치를 앞세우는 것만으로 정치에서 성공하기는 어렵다. 진보의 가치, 조직으로서의 정당, 나아가서는 민주주의조차 정치를 구성하는 부분에 불과하며 정치는 그보다 훨씬 넓고 풍부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다루는 문제의 범위만큼 크고 강력한 것은 없다. 참여자의 규모에 있어서 현대 대중 정치에 비견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 때문에 정치는 인간 사회의 다른 어떤 영역보다 큰 ‘가능의 공간’인 동시에 매우 위험한 분야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그 이유는 ‘권력’의 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는 데 기인한다. 정치에 있어서 권력은 전체 공동체의 질서와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면서 타인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강제성을 본질로 한다.
따라서 현실에서 정치란 운명적으로 권력을 어떻게 선용할 것인가 하는 ‘적극성’의 문제와 권력을 다투는 사람들에게 책임성을 어떻게 부과할 것인가의 ‘제한성’의 문제 사이에서 고통스럽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나 정치학자도 이 딜레마를 ‘이해’하는 데 기여할 뿐이며,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은 결국 정치를 소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좋은 정당을 만드는 문제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키우고 지키는 일 중요
‘정당론의 마지막 패러다임’의 개척자로 평가되는 안젤로 파네비안코라는 이탈리아 정치학자가 있다. 그는 왜 어떤 진보정당은 정치적으로 성공하고 왜 어떤 정당은 그렇지 못했나를 탐구했다. 그는 성공한 진보정당은 정치가와 지도자의 역할을 유연하게 허용하는 당내 결정구조를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의 결론이 절대적 진리가 될 수는 없지만, 늘 협소한 조직논리를 우선시한 우리 사회 진보정당들은 생각해봐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정치가를 키우고 지키는 일의 중요성은 진보에 더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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