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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커피는 커피 애호가들이 최고로 꼽는 커피 가운데 하나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하와이안 코나, 예멘 모카를 묶어 ‘세계 3대 커피’라 부르기도 한다. 호되게 값이 비싼 블루마운틴이나 코나 커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접근할 만한 가격이어서 가끔 마시곤 한다. ‘모카’는 커피를 수출하던 예멘의 항구 이름인데, 우리가 익히 아는 에티오피아 커피들도 이 항구를 통해 수출을 해서 같은 이름이 붙었다. 여기서 수출하던 커피가 얼마나 맛이 좋았는지 ‘모카’는 아예 일반명사가 되어버렸다. 예멘 모카가 가진 진한 초콜릿 맛을 재현하려고 커피에 초콜릿, 코코아를 넣다가 아예 초코 맛을 내는 식음료에 모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다. 우리가 자주 마시는 달달한 카페모카는 예멘 모카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코코아시럽을 듬뿍 넣었다는 뜻이니까 헷갈리지 말자. 에스프레소를 뽑는 가정용 기구에도 ‘모카포트’라는 말이 붙어있으니 모카는 커피의 대명사쯤 되겠다. 한번은 인터넷에서 ‘목화커피’라고 쓴 것을 보고, 모카가 한국에 와서 참 고생이 많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에티오피아 시다모 지역의 한 가정에서 여주인이 손님들을 위해 커피 생두를 숯불에 볶고 있다. 강윤중 기자

요즘에는 예전보다 예멘 모카를 만나기가 많이 힘들어졌다. 생두를 수확, 세척, 건조하는 과정을 기계로 처리하는 다른 커피생산국들과 달리 예멘은 재배지도 좁은 데다 모든 과정을 사람 손으로 일일이 처리하는 영세농이 대부분이어서 생산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 값이 비싼 것도 그 탓이지만 주로 어린아이, 여성, 노인들이 하찮은 돈푼을 벌려고 산비탈을 오르내린다니, 예멘 커피를 소중하게 대접해야 한다. 그래서 커피콩의 크기도 빈약하고 제대로 선별을 하지 않아 원두 상태가 엉망이지만, 그 덕분인지 오히려 맛은 뛰어나다.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의 소식을 접하고 예멘 모카부터 떠올린 것은 내가 생각해도 배부른 자의 사고습성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실제로 내 배가 좀 많이 부르긴 하다. 예멘 하면 모카커피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배부른 자와 테러리스트, 강간범, 일자리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지난주 예멘 난민 신청을 불허하라는 청와대 청원에 22만명이 넘게 서명했다는 뉴스를 보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이슬람 문화의 파급부터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보수 기독교인들이 청원자의 상당수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무슬림 혐오가 미국, 유럽의 문제를 넘어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은 정서가 된 것은 분명 이들 기독교인 탓이 크다. 외국인, 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가 기독교인들만의 것은 아니고 꽤 널리 퍼진 정서이긴 하지만, 그 원형은 한국 개신교의 배타주의에서 고스란히 발견된다.

근본주의 종교가 다 그러하지만 특히 기독교는 긴 역사에서 배타주의의 교리를 강화해온 대표적인 종교다. 낯선 타자에 대한 기독교 관점의 변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원래 유일신보다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의 신만 믿는 단일신에서 출발한 기독교가 유일신 신앙을 확립한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였다. 이방인에 대한 관용의 정신을 가졌던 로마는 이즈음부터 이방인을 정복해야 할 ‘이교도’로 만들었고, 이것은 제국의 재확립과 궤를 같이한다. 중세를 거치면서 이교도는 ‘불신자’로 바뀌어 마녀사냥과 십자군전쟁 등 내외부의 적을 타도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다 신대륙 정복에 열을 올리던 근대 초가 되면 불신자는 교화해야 할 ‘미개인’으로 바뀐다. 19세기 이후 미개인 관념은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의 먹잇감인 ‘원주민’ 또는 ‘저개발국민’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한국의 보수 기독교는 이런 기독교의 오랜 배타주의에다 친미, 극우, 성장주의라는 3종 세트를 구입하여 더욱 완고하고 광적인 신생종교로 재탄생한 듯하다. 기독교의 종주국 미국이 이룬 풍요를 흠모한 나머지 배금주의, 현세주의, 성장주의까지 몽땅 받아들인 셈이다. 보수 기독교인들이 합세한 태극기집회에 미국이 옹호하는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 국기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 기독교는 진정 에큐메니컬을 이룬 듯하다. 예멘 난민들이 테러리스트이고 강간을 일상적으로 벌이며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을 사람들이라는 지독한 편견은, 이념화된 배타주의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나름의 합리적 이유라고 붙이는 말들을 보면 타자는 물론이고 우리들 자신에 대한 배제의 논리이기도 하다. 소수자, 비정규직, 여성 등을 분리하고 차별하는 논리 말이다.

기독교가 와인 문화라면 이슬람은 커피 문화이고, 천문학과 수학의 빛나는 성과를 서양에 전했으며, 구약을 공동 정전으로 가진 문명이라는 것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았을까. 출판인으로서 ‘이슬람의 지혜’ 같은 책이라도 펴내야 하나보다.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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