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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수는 시·도교육감 선거에서도 대패했다. 전체 17개 시·도 가운데 서울과 경기 등을 포함해 14곳에서 진보 후보가 승리했다. 울산에서도 처음으로 진보 성향의 후보가 당선됐다. 진보 후보들의 득표율은 4년 전에 비해 모든 지역에서 크게 올랐다. 보수가 승리한 곳은 대구와 경북, 대전뿐이다.

보수 진영은 패인을 ‘깜깜이 선거’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유권자들이 교육감 선거에 기본적으로 관심이 낮은 데다 남북, 북·미 회담 같은 초대형 이슈가 터져 후보자 자질이나 정책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가 치러졌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보수 교원단체가 제기하고 보수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교육감 직선 제도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얘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보수의 무책임한 자기 합리화로 유권자 모독이다. 정치 중립이 생명인 교육의 특성상 교육감 선거는 정당 공천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교육감선거 투표용지에는 정당 표시나 기호가 없고 후보자 이름만 있다. 그런데도 진보 성향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면 유권자들이 작심하고 그들을 골라 찍었다고 해석하는 게 상식적이다.

보수 논객들은 학부모 아닌 유권자들의 경우 교육에 관심이 없어 진지하게 투표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일부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고 학부모 아닌 유권자들의 표심을 무시해선 안된다. 어쩌면 한국 교육에는 이들의 의견이 더 중요하다. 교육감이 누가 되느냐에 직접적인 이해가 없으므로 이들의 표는 사심이 없고 공정하며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재선·삼선에 성공한 교육감들에 대한 보수 진영의 폄훼도 지나치다. 이번 선거에서는 현직 교육감 12명이 출마해 모두 당선됐다. 선거가 깜깜이로 진행된 탓에 높은 인지도 등 ‘현직 프리미엄’을 이용해 당선됐다는 것이 보수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남경필 경기지사나 유정복 인천시장 같은 인사들은 왜 낙선했을까. 현직 프리미엄은 교육감 선거에만 있지 않고 시·도지사나 구청장 선거에도 있으며 4년 중임제인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존재한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만 결정적 변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전임 정권에서 법외노조 처분을 받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이번 선거에서 사실상 복권된 셈이다. 교육감 당선인 중 전교조 출신이 10명이다. 보수 후보 중에는 이렇다 할 공약도 없이 ‘전교조 반대’ 슬로건 하나로 출마한 인사들이 많았지만 유권자들의 평가는 냉혹했다. 그러나 보수 진영은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정반대로 교육계가 좌파 세력에 장악됐다면서 색깔론 퍼뜨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에 당선된 일부 보수 후보들이야말로 운이 좋았다. 대구는 강은희 후보가 40.7% 득표율로 당선됐지만 진보 성향의 김사열·홍덕률 후보도 각각 38.1%와 21.2%를 얻었다. 진보 단일화가 이뤄졌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경북에서 당선된 임종식 후보의 득표율은 28.2%로 교육감 당선인 중에 최하위다.

유권자들이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후보들을 택한 것은 한국 사회 최고 현안인 교육 양극화 해소에 이들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진보 교육감의 상징인 혁신학교가 학부모 학생들로부터 호응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지난 9년 보수 정권은 아이들을 서열화하고 불필요한 경쟁으로 내몰았다. 교육 복지 확대에 소극적이고, 국사 교과서 국정화 같은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밀어붙였다. 민의를 거스른 집단에 표로 심판하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늘 있는 일이다.

깜깜이 선거와 묻지마 투표는 시·도의원과 구의원 선거가 더 심했다. 유권자 상당수는 지금도 구의원은 물론이고 시·도의원 당선인을 모를 정도로 지방자치에 무관심하다. 이 문제는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를 더욱 확고하게 해 지방의회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을 높이는 방향으로 풀어야 한다. 교육감 선거에 관심도를 높이는 방법도 똑같다. 교육자치를 지역과 단위학교까지 뿌리내리게 하고 청소년들에게 참정권을 확대하는 것이 실질적인 해결책이고 헌법정신에도 부합한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 교육감 직선 제도도 마찬가지다. 임명제와 학교운영위원 간선제를 거쳐 주민 투표로 결정하는 현재 방식은 민주화의 산물이지만 문제가 있으면 수정·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를 대하는 보수의 태도를 보면 4년 뒤에도 승산이 없다고 보고 아예 판 자체를 깨버리자는 생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수업 시간에 딴짓만 하다 낙제한 학생이 합격점을 받은 친구를 시기·질투하며 무조건 교육 제도가 잘못됐다고 떼를 쓰면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오창민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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