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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하고 너그러운 아저씨, 유머러스하고 짓궂기도 하지만 솔직 겸손해서 왠지 안전한 아저씨, 남을 잘 배려하고 베푸는 아저씨, 머릿속에서는 이런 이상적인 아저씨가 되고 싶지만 현실은 다르다. 길거리에서 매일 마주치는 퉁명스러운 중년들처럼 나는 아마도 성마르고 지루한 비호감의 아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가까운 동년배 친구 중에는 앞의 이상적인, 닮고 싶은 아저씨도 분명 있는데 말이다. 내 주변을 잘 아는 이들은 누구를 말하는지 금방 눈치챌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친구도 지방 강연을 위해 탄 KTX 안에서는 독서를 방해하는 전화통화들과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시끄러운 대화들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친척을 욕하고, 용돈을 덜 줬다고 자식을 험담하고, 아이의 대학 합격을 자랑하는 대화를 SNS에 고자질하며 괴로움을 토로한다. 

3번 열차 4C 좌석의 집사님, 아이가 대학에 간 건 예수 잘 믿어서가 아닙니다. 저도 원고 좀 씁시다.

공공의식의 부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마른 나는 대중교통 안에서 자주 낯을 붉힌다. 휴대전화를 들고 30분씩 통화하는 사람들은 아줌마, 아저씨, 아가씨의 구분이 없다. 계속 눈치를 줘도 의식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던진다. “통화 좀 줄이죠. 조용한 버스 안에서는 아무리 작게 얘기해도 신경이 쓰인다고요.” 전화통화는 흘려들을 수 있는 잡담소리와는 또 달라서 한쪽의 이야기만 귀에 들어오니 신경을 긁는다.

버스에서 내려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다보면 사람이 걷고 있는데도 그 앞을 휙 지나가는 승용차, 짐차가 부지기수다. 멈칫거리는 기세도 없이, 바쁜 나를 누가 방해하느냐며 돌진한다. 광화문 사거리에 나가면 매일처럼 예수 전도단이 진을 치고 확성기와 스피커로 지나는 사람을 괴롭힌다. 그 앞을 지나다가 귀가 멀 정도의 큰 소리에 혼비백산했다. 그들이 찬양하는 천국은 내게는 지옥이다. 

경찰은 왜 이런 행위를 방치하는가? 단속이라도 하면 종교탄압이라고 항의하겠지?

사적인 것과 공적 공간이 한데 뒤섞여 잡탕을 이룬 도시는 서로에 대한 불신 지옥으로 변해가고, 이상적인 인격을 지키고 싶은 이 아저씨는 점점 성마르고 퉁명스러운 아재가 되어간다.

나는 ‘대중’이라는 말로 우리들 시민을 집합적인 하나로 묶어 비난하거나 떠받드는 모든 담론이 허망하게 느껴진다. 우리 모두는 한 명의 유권자이지 백 명의 유권자로 모인 것이 아니다. 

개인의 권리와 욕망을 모두 등가물로 환산하여 하나의 표를 부여하지만, 그 표들은 집단적 욕망으로 뭉쳐서 ‘광주항쟁’을 북한군의 공작이라 떠드는 정치인을 대표자로 옹립한다. 표현의 자유가 ‘표현의 자유’ 자체에 대한 폭력이 되어도 표현의 자유로 옹호해야 한단다. 

시민다움을 배반하는 이들을 시민으로 옹호해야 하는가? 그런 점에서 김수영의 시를 빌려 “왜 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자책한 박완서 선생의 반성은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었다. 시민 일개인의 사적 욕망과 행위가 공적 공간에서 함부로 허용될 때는 그 시민들의 권리를 가능하게 하는 공적 토대를 흔들 테니까.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을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으로 나누고, 시장의 영역을 사적인 것에, 공동체적 토론과 합의를 공적인 것에 각각 배정한 바 있다. 

특이한 점은 우리가 완전 경쟁과 동등한 권리로 참여하는(참여한다고 믿는) 시장에서의 활동을 사적인 것으로 본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적 ‘필요’에 따른 활동이 시장이라는, 이해관계와 경쟁을 근간으로 하는 영역을 구성한 것이니까. 개인으로서 자신의 필요를 해결해야 하는 시장 속의 인간은 사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고, 그는 타인의 존재를 전제하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들(가령 공동체 유지와 함께 사는 환경의 보존 같은)을 할 때 비로소 공적 영역에 들어선다.

시장은 이렇게 본질적으로 공적인 것과 대립하지만, 우리는 시장에서 체화된 경쟁의 감각을 공적인 영역에서도 적용하고자 한다. 대중교통과 도로의 공적 공간을 사유화하고, 그것을 함께 이용하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그의 존재를 무시한다. 

이렇게 공적 공간이 사유화되면 가령 임대아파트의 주민들과 아이들이 대형아파트를 가로질러 등교할 수도 출근할 수도 없는 일까지 벌어진다. 

사소하고 작은 것으로 치부하는 우리들 각자의 시장화된 욕망은 그 자체로 문제일 뿐만 아니라 헬조선의 오늘을 만들어낸 주범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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