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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은 짧은 기사나 칼럼, 책 한 쪽의 구절 때문에 꽤 긴 시간 상념이 이어질 때가 있다. 이번에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칼 포퍼 등을 통해 신자유주의 정치의 탄생 과정을 다루었다는 신간 소개가 생각을 불렀다. 다니엘 스테드먼 존스의 <우주의 거장들>이라는 책이다. 안 읽은 책을 가지고도 30분씩 떠들곤 하는 이 업계의 버릇대로 예전 기억들을 줄줄이 소환했다.

지나가는 버스 뒤꽁무니에서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다’라는 커다란 광고 글귀를 본 기억부터 떠올랐다. 한 경제신문의 광고인데, 그들이 신봉하는 밀턴 프리드먼의 말인 것까지는 이해한다 해도, 공짜점심은 없다는 저 도저한 이데올로기적 믿음이 역겨워 속이 울렁거렸던 기억.

1997년이었다. 외환위기가 찾아오고 사회 전체가 뒤숭숭했다. 1930년대 대공황의 흑백사진 같은 풍경이 눈앞을 스쳤고 세상이 곧 망할 듯했다. 나는 당시 잘나가던 경제경영 저자가 때맞춰 써낸 원고의 편집을 맡고 있었다. 저자가 제안한 책 제목이 바로 ‘공짜점심은 없다’였다. 결국 다른 제목을 붙였지만, 그 말을 접한 순간부터 거부감을 감추느라 애써야 했다. 역겨운 말이었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려면 싫은 일도 맡을 수밖에 없는 처지야말로 공짜점심은 없다는 말을 입증하는 듯해서 더 싫었다.

젠장,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 내가 못살거나 망하거나 이 모양인 것은 내가 언젠가 먹은 점심을 공짜라고 착각해서 널름 받아먹은 탓이 아니야. 보상이 언제나 숨은 비용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 비용을 치르지 않아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니야. 인간으로 태어나 이 사회에서 사는 한, 그는 이미 자신의 값을 하는 것이고 공짜점심쯤 먹을 권리가 있어. 내 푸념을 한 친구가 받아주었다. 가난한 사람이 없다면 부자의 성취도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그들 역시 제 몫을 하고 있는 거겠지. 비록 멸시와 동정의 방식일지언정.

공짜점심론은 가난의 이유를 개인화한다. 프리드먼의 주장만 해도 그러하다. 정부의 공공지출을 통해 대중의 유효수요를 창출함으로써 경제를 회복할 수 있다는 케인스의 처방에 대해 프리드먼은 그런 정부 개입, 곧 ‘공짜점심’은 반드시 다른 비용을 일으키는데, 이를테면 높은 세금으로 경제 의욕을 꺾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나 자본이 쌓아올린 기왕의 부라는 것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진 행운이란 말인가? 기업과 노동자가 똑같이 책임을 나눠 가지는 동등한 원자란 말인가? 나는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일찍이 버나드 맨더빌이 그의 책 <꿀벌의 우화>에서 개인의 탐욕과 이기적인 욕망 추구가 경제와 사회를 발전시킨다고 주장한 데서 얼마나 더 나아간 것인지.

알다시피 꿀벌들이 그렇게 분발하여 거둔 성과는 늘 어떤 기업, 어떤 자본들이 크게 잡수시고 나머지를 찔끔, 분발한 벌들에게 떨어뜨려 주지 않았나. 분발자는 나의 분발이 성취한 그 놀라운 보상에 엉엉 울며 감동하고, 자기계발의 빛나는 성공담을 좇아 다시 분발의 최전선에 앞장서지 않았나. 그런데도 공짜점심 같은 건 없으니 각자가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고? 모두 공평한 비용을 치르기만 하면 좋은 점심을 먹을 수 있다고?

아마도 <우주의 거장들>이라는 책은, 욕망에 충실한 개인들의 합리적 결정과 조정이 이루어낼 조화로운 번영세상을 우주적 보편성으로 믿은 거장들의 헛된 신념을 다루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기심의 발로든 정당한 욕망이든 철저하게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개인들이 취하는 결정과 행동은 늘 합리적이며 따라서 조화로 나아간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라 부르는 경제, 정치, 철학의 총체적 신성동맹은 ‘리버럴’이라 부르는 정치적 자유주의와도 뗄 수 없을 것이다. 그 ‘열린 사회’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은 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평평해진 세상이야말로 자본만으로 이루어진 꽁꽁 닫힌 보편성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우연하고도 불완전한 존재이다. 우리는 일쑤 자기희생이나 양보와 절제로도 욕망의 실현 못지않은 행복감을 누린다. 세상에 공짜점심은 많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 불시의 행운, 선하고 정의롭게 사는 이에게 찾아오는 평화. 우리 의지의 준칙은 경제적 욕망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오거나 창공의 빛나는 별에서 내려오는지도 모른다.

공짜점심이 과연 없느냐는 질문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자 많은 분들이 나서주었다. 포스팅에 줄줄이 달린 댓글에 공짜점심을 사주겠다는 지인들이 줄을 섰다. 아니, 내가 공짜점심 먹고 싶어서 이런 글을 썼나. 뭐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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