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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명태가 잡혔다고 한다.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서 12월 중순 이후 일주일째 매일매일 올라온다고 한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백, 수천 마리가 잡히고 있다.

예로부터 명태는 동지가 지나 장이 열린다고 했으니, 연말을 지나 1월까지 추이를 지켜보면 명태의 귀환 여부를 판단내릴 수 있을 것이다.

명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씨가 마르기 시작했다. 국민생선이라 불릴 정도로 흔했던 명태는 어느 날부터 금태가 되었다가 이제는 전량을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남의 나라 생선이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 명태는 수입해서 먹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그러던 차에 거의 20년 만에 대량으로 명태가 잡힌다는 소식을 접하니 놀랍고도 반가운 일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아예 머나먼 알래스카로 떠나버린 줄 알았던 명태는 어떻게 돌아왔을까. 명태가 계속 잡히길 바라는 마음만큼 그간의 사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일 강원 고성지역 어민들이 죽왕면 공현진 연안의 수심 60~80m에 쳐 놓은 그물에 1340여마리의 명태가 잡혔다. 고성군 제공 지난 20일 강원 고성지역 어민들이 쳐 놓은 그물에 1340여마리의 명태가 잡혔다. 고성군 제공

명태의 어획량이 정점을 찍은 것은 1981년이다. 이 해에 잡힌 명태 중 절반이 성어였고 절반이 새끼였다. 그런데 마릿수로 보면 90%가 새끼였다. 일명 노가리. 노가리를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이면서 명태 어획량은 매해 줄었다. 마침내 2008년부터 어획량은 쭉 ‘0’을 기록했다. 나는 이 ‘제로’라는 수치가 충격이었다. 명태 한 마리가 한 해에 수십만개의 알을 낳고 죽을 때까지 120만개를 낳는다고 한다. 그런데 제로라니. 얼마나 무차별적으로 명태를 잡아왔는지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수온 상승을 원인으로 꼽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어느 정도 자란 명태가 서식하는 동해 400~500m 수심은 오히려 0.5도 낮아졌다고 한다. 그러니 다시 화살은 노가리를 찢어 먹은 우리에게 향할 수밖에.

어머니 고향이 속초이고 어려서부터 명태와 그 부산물을 먹고 자라온 나는 명태를 유난히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누구보다 명태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렸다. 2014년부터 명태 양식 연구가 착수되었다. 수조에서 수정시킨 알이 치어로 부화해 자라는 걸 다큐멘터리로 지켜보며 설레기도 했다.

남해에서 씨가 마른 대구가 치어 방류 이후 다시 풍어를 이룬다는 소식은 명태의 귀환에 더욱 희망을 걸게 했다. 어획량으로 볼 때 대구와 명태는 세계 1, 2위다. 아마 지난 1000년간은 그랬을 것이다. 그만큼 종 유지가 탄탄하게 되고 있다는 얘기니, 명태 회유노선의 포물선을 강원 앞바다에 다시 살짝 걸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2015년 세계 최초로 명태 양식에 성공해 그해 12월19일 고성 앞바다에 첫 방류를 한 이후 정확히 3년이 지난 올해 겨울 벌써 2만마리가 잡혔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들이 방류한 명태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좀 더 자세히 따져보자. 어류도감에 따르면 명태는 보통 3~8년생이 알을 낳는데, 가장 많이 낳는 연령은 4~6년생이다. 알에서 부화한 새끼들은 약 6개월 얕은 바다에서 자라다가 점차 깊은 바다로 간다. 1년 자란 명태는 15~20㎝, 2년 자란 명태는 25~35㎝, 3년은 35~40㎝, 4년은 40~45㎝, 8년이면 60㎝ 이상까지 자란다.

그렇다면 이번에 잡힌 명태는 몇 년쯤 자란 것이며 어느 정도 크기일까. 직접 고성에 가서 취재한 보도에 따르면 30㎝ 안팎이다. 겨우 2년 자란 명태라는 얘기이며 아직 산란할 시점에 도달하지 못한 셈이다.

그런데 명태가 잡힌다는 소식이 들리자 너도나도 조업에 나서 벌써 2만마리나 잡아들였다고 한다. 실로 걱정스럽다. 잡힌 명태 중에는 표식을 부착해 방류한 개체도 4마리가 발견됐는데, 모두 이달 10일에 갓 방류한 것들이었다.

다행히 해양수산부가 올해 7월 내놓은 수산자원관리법 개정안이 내년 1월 중 통과되면 1년 내내 명태를 잡을 수 없다. 이후엔 종수 회복을 판단해 허가가 내려질 전망이다. 관건은 요즘 잡힌 명태 중 40㎝ 전후의 개체가 과거 방류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래야 방류 이후 최소 1~2년 깊은 바다에서 자란 명태가 돌아온 것임이 입증되기 때문이다. 산란까지 한 게 밝혀지면 완전양식 및 종 회복 사이클이 정상 궤도에 오르는 것이니 말이다.

10여년 전 새벽, 을지로 골목 인쇄소에서 필름 검판을 마치고 출출한 속을 달래러 혼자 동태매운탕을 먹으러 갔다. 꽤 노포였는데 냉면 대접에 동태국이 벌겋게 담겨 나왔다. 간이 들어가 국물이 기름졌고 대파가 듬성듬성 크게 썰어진 국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였고 밖에는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그날 허전한 속을 달래준 진한 동태국 맛을 잊을 수 없다.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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