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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국제아동도서전이 열렸다. 이런 종류의 행사로는 세계에서 가장 전통 있고 규모가 큰 이 행사에 우리나라의 참여도 활발하다. 볼로냐는 중세 시절부터 유럽의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대학교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2월 작고한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가 이 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기호학을 가르쳤다. 한국에서 볼로냐로 가는 직항이 없어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한번 갈아타야 한다. 개막 전날 프랑크푸르트에서 볼로냐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수많은 한국 사람들과 함께 탔다. 이 사람들은 어떤 꿈을 안고 이 도서전을 찾았을까? 열 시간을 훌쩍 넘긴 여정에 지쳤을 법한데도 표정에 담긴 긴장과 기대를 읽을 수 있었다. 무엇일까? 궁금했다.

이전과는 얼굴을 싹 바꾼 한국관의 표정은 밝았다. 한국에서 출판사 40여곳이 참가했는데 모두 다 칭찬이 자자했다. 현장에서 실무를 진행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 해외사업부원의 이야기로는 도서전 참여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이 이윤이 많이 남지 않아서 하고자 하는 업체들이 없었는데 이번에 의욕 있는 곳을 만나 많이 바뀌고 호응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관 초입에서 만난 대형 출판사 대표의 얼굴은 어두웠다. 한국의 어린이 책 시장 상황이 어려워서 이곳에 온다고 했다. 어린이 책을 중심으로 중고책 시장이 너무 커져서 책이 순환은 되는데 새 책은 안 팔린다는 주장. 출판사도 어렵고 저자도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볼로냐에서 주목받거나 상을 받으면 한국에서의 판매도 높아지고 여러 나라에 번역 수출도 기대할 수 있다.

개인으로 참가한 사람들도 많았다. 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도서전 행사장 초입에는 스스로 준비한 그림과 연락처를 붙일 수 있는 하얀 벽이 준비되어 있다. 아침에 행사장에 들어설 때 텅 비어 있던 이 벽이 금세 다양한 그림들로 가득 찼다. 이튿날에는 그림이 붙은 면적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어떤 눈 밝은 사람이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알아보길 바라는 염원이 가득했다. 그 무게를 전시장의 가벽이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 벽을 지나 걸어 들어가면 여섯 개 대륙에서 날아온 출판사들이 저마다의 책을 뽐내고 있다.

올해부터 서울국제도서전의 실무 진행을 맡은 터라 출판사들의 전시를 주의 깊게, 반복해서 돌아보았다. 전시장 전체의 분위기는 큰 출판사들의 대형 전시장과 국가별 공동 전시관이 주도했다. 비용 문제 때문에 주최 측에서 제공할 수 있는 기본 전시관의 형태나 크기는 서울이나 볼로냐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규모의 경제를 통해서 이윤을 만들 수 있는 큰 출판사는 따로 비용을 들여 전시를 꾸밀 수 있다. 작은 출판사들은 매출 규모로 보아 그런 전시를 꾸미는 데 쓸 예산을 만들기 어렵다. 국가별 전시관을 멋있게 꾸며 여러 출판사들을 수용하듯이 뜻이 맞는 작은 출판사들이 모여 멋진 전시관을 하나 운영하는 것은 어떨까? 작은 출판사들이 어느 나라보다 많고 중요한 우리나라에서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할 일이다.

서울 합정역에 5000평 규모의 매장을 여는 교보문고가 면적의 절반 이상을 다른 상품들에 할애한다는 풍문을 들었다. 그렇다면, 책은 미끼인가? 볼로냐 도서전의 올해 슬로건은 ‘상업, 예술, 기술의 화려한 융합’. 전시감독 엘레나 파졸리는 올해가 어린이 도서전에서 어린이 콘텐츠전으로 전환하는 시점이라고 이야기했다. 볼로냐 도서전 입구를 들어서서 메인홀로 빠지는 골목을 지나면 양 갈래 길을 만난다. 왼쪽으로 가면 디지털 미디어관, 오른쪽으로 가면 라이선스 전시관. 새로운 수요, 더 큰 수요를 창출할 기술과 캐릭터에 이야기를 더해 대중적인 상품에 적용하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이다.

책만 팔아서는 불가능한가? 충분한 이윤을 거두어 멋진 전시관을 짓는 일. 책의 숲을 만들고 거기서 책만 팔아서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고 충전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 아니, 도대체 책 만들고 팔아서 먹고사는 일은 가능한 것인가? 분명한 것은, 다품종 소량생산이면서 지식집약적인 책을 만드는 것이나 그 책을 유통하는 것 모두 이윤이 박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책을 팔고자 하는 고민은 그저 돈을 벌겠다는 장사치의 저급한 욕망의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행위의 부산물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인류가 성취한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그릇이고 오랫동안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온 집단의 기억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잃지 않는 길은 책만 팔아서 가능한 것들이 늘어나야 한다고 믿는다. 응용과 융합을 통해 더 큰 이윤을 좇다가 우리 사회가 더 큰 것을 잃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주일우 | 이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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