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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계의 평신도 사직인 집사(執事·Deacon)는 그리스어로 ‘시중드는 자’를 뜻한다. 성서에는 ‘보조자’로 번역돼 있다. 사도 바울은 ‘디모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보조자는 부정한 이득을 탐하지 않고, 깨끗한 양심을 간직한 사람”으로 규정했다. 집사에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변호사 업계에서 일컫는 ‘집사’는 본래 의미와 거리가 멀다. ‘집사 변호사’는 수감 중인 의뢰인의 말동무를 해주거나 잔심부름하기 위해 구치소를 드나드는 변호사를 가리킨다. 집사 변호사와 접견하는 수감자는 노역에서 빠질 수 있고, 대기시간까지 합쳐 2시간가량을 수감시설보다 쾌적한 곳에 머물 수 있다.
하지만 수감자가 재벌 총수나 정치인 등 돈과 권력을 갖고 있는 이른바 ‘범털’이면 사정은 달라진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법부무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24일 기준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금일수 147일간 148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78일간 237회,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205일간 209회나 변호사를 접견했다. 집사 변호사들이 국정농단 사범들의 ‘황제 수감’ 도우미로 전락한 것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횡령 혐의 등으로 복역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516일간 1607회, ‘땅콩회항 사건’으로 수감됐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42일간 124회에 걸쳐 변호사를 만나 ‘특혜 접견’을 했다. 집사 변호사들은 수감자들을 접견하면서 시간당 20만~30만원 또는 월 250만~300만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재력가들은 월 500만원을 내고 접견 시간과 횟수를 늘린다고 한다.
집사 변호사들의 접견권 남용 행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법무부가 지난 19일 규제책을 내놨다. 수사·재판 준비와 무관한 편의제공, 외부 연락이나 재산관리를 위한 반복적인 접견을 제한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늦었지만 당연한 조치다.
집사 변호사들은 바울이 언급한 집사의 자격도 없을뿐더러 ‘변호사는 기본적인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명시한 변호사법 제1조를 어기고 있는 셈이다. “굶주린 사자보다 배고픈 변호사가 무섭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집사 변호사에게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는 법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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