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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문 열고 나가려는데 웬일인지 문이 안 열리는 겁니다. 손가락 세워 낑낑거리고 있노라니 어머니가 졸음 가득한 목소리로 그러십니다. “너 창문에서 뭐 하니?” 뒤뜰로 난 조그만 창문에 달빛 훤하니 잠결에 거기가 문인 줄 알았던 거지요.

‘자다가(아닌 밤중에) 봉창 뜯는다’는 속담이 이런 경우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급작스럽게 당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이야기나 행동을 할 때 쓰는 말이지요. 봉창(封窓)은 열 수 없도록 만든 창입니다. 방에 내는 봉창은 창살에 종이를 발라 채광과 보온을 하고, 부엌이나 광에 내는 봉창은 창살만 박아두어 채광과 환기를 시킵니다(이런 봉창은 ‘살창’이라고 부릅니다).

자다 일어나 비몽사몽간에 밖으로 나가려다 보면 착각할 만하겠지요. 열리는 창문이라면 열자마자 나갈 수 없다는 걸 알 텐데, 애를 써도 안 열리니 문인데 왜 안 열리나 창에 발린 종이만 계속 북북 뜯습니다.

같은 속담으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홍두깨를 ‘남성기’로 보아 보쌈이나 겁탈로 해석하는데, 이 속담의 온전한 형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얻어맞듯’입니다. 홍두깨는 다듬잇돌 대신으로 쓰는, 한 발 길이에 두껍고 단단한 몽둥이를 말합니다. 여기에 천을 둘둘 감고 다듬잇방망이로 두들깁니다.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란 속담에서 알 수 있듯, 방망이보다 열 배는 큽니다. 낮에 있던 일을 한밤중까지 생각하다가 순간 욱해서 홍두깨 집어 들고 남의 집에 들이닥치는 느닷없는 날벼락 상황이 상상됩니다.

다투다 수업 종 울려 씩씩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가 한창 수업 중에 돌연 날아차기 하던 친구도 보았습니다. 혼자만의 생각이나 당장의 욕망에만 매몰되면 사리분별을 못합니다. 정신 놓고 함부로 여는 문은 나갈 문이 아니지요. 온전한 출구는 꽉 막힌 봉창에서 물러나 두루 살필 때 비로소 시야에 들어옵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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