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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눈을 지고도 끄떡없는,
더 새파란 그늘을 펼친 주목 옆에
고사목 하나
모가지 부서지고
어깨가 깨졌지만
살아 있는 것보다 더 곧게
죽음 속에서
죽음을 넘어
마지막 큰 가지를 북대 쪽으로
가라,
너는 네 길을 가라
혼자서 가라, 거기에 아무것 없을지라도
굶주린 멧돼지와
피투성이 삵과
통곡하듯 번쩍이는 빙벽들의 그믐밤을 부르며
전동균(1962~)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잣눈은 척설(尺雪)과 같은 뜻이다. 많이 쌓인 눈을 일컫는다. 말라서 죽은 나무 위에 눈이 한가득 쌓였다. 그러나 나무는 꿋꿋하게 섰다. 이 가지 저 가지가 군데군데 꺾였으나 위를 향해 곧게 섰다. 의연한 기품으로. 새파랗게 그늘을 펼치며 생생하게 살아 있었을 때보다 더 흔들림이 없이 반듯하게 섰다. 시인은 이 고사목으로부터 기개를 본다. 굽히지 않는, 자신을 신뢰하는, 자립하는 지조를 본다. ‘북대’는 신성하고 고고한 정신의 거처일 테다. 울음과 허기와 피투성이의 계곡 너머에 있는, 차디찬 빙산 그 너머에 우뚝 솟아 있는, 영적인 그런 곳일 테다. 무엇에도 기죽지 말고, 비록 종국에 어떤 보답도 받지 못하더라도 스스로의 의지대로 살 일을 생각해본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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