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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교복’. 서울시교육청에서 숙의민주주의 방식으로 진행된 공론화 의제 제1호다. 추첨으로 선정된 229명의 시민참여단은 다양한 방식으로 온종일 토론했다. ‘교복 결정 시, 학생 의견 반영비율’에 관해 토론 후 생각을 바꿨다는 시민참여단이 64%나 됐다. 그렇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생각의 변화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각종 토론 현장에서 보면, 토론자로 나온 사람들은 대화하러 나온 민주주의자가 아니라 모두 ‘빠떼루’ 자세를 취하고 있는 레슬러 같다. 한쪽은 ‘빠떼루’ 자세로 바닥에 사지를 붙이고 바짝 엎드려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상대쪽은 그를 바닥에서 떼어내 뒤집으려고 한다.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자와 그것을 들어 뒤집으려는 자,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토론과 대화의 모습이 아닌가? 파커 J 파머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에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비통한 자들’이 되어버린 우리들에게, ‘부서져 흩어지는(broken apart)’ 것이 아니라 ‘부서져 열리는(broken open)’ 마음을 요구한다. 나의 마음을 부숴버린 타자에 응대하기 위해서는 나의 신념과 타자의 신념이 충돌하여 일어난 모순과 긴장을 가슴속에 품고 더 크고 넓은 해결책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 ‘생각 바꾸기의 가능성’이 없는, ‘체제와 제도의 집합체로서만 존재하는 민주주의’는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한다. 생각 바꾸기를 패배로 여겨서는 안된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미움받을 용기>가 아니라 <설득당할 용기>가 진열되어야 한다. 토론 이후에 생각을 바꾼 64%는 용기 있는 진정한 민주시민이다.

<송재범 |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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